통일연구원이 2014년부터 실시하고 있는 KINU 통일의식조사는 국민들이 통일과 북한, 그리고 정부의 통일과 대북정책에 대해 품고 있는 태도를 측정하고 그것을 심층분석하기 위한 연구이다. KINU 통일의식조사는 과학적이고 신뢰를 담보할 수 있는 조사방법을 사용하여 국민 여론의 변화를 추적‧측정하는 작업을 11년째 해오고 있다. 본 연구는 그 조사 결과를 기반으로 정부의 한반도 정책 결정 과정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며, 정책의 효과성을 예측하고 환류하기 위한 연구이다.
KINU 통일의식조사는 매년 결과를 발표할 때마다 국내외 언론의 많은 주목을 받으며,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의 연구자들도 즐겨 인용하는 한국의 대표적 여론조사로 인정받고 있다. 2014년부터 시작된 KINU 통일의식조사는 2019년, 2020년, 2021년에는 2회씩 조사를 진행하였다. 따라서 11년째를 맞는 2025년 조사는 조사차수로는 15차 조사가 된다.
매번 조사할 때마다 동일한 조사방법(대면면접조사)와 조사도구, 샘플링 방식을 사용하여 데이터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1회에 약 200여 문항을 조사하여 상당히 광범위한 주제를 연구하고 있다. 통일, 북한, 대북 및 통일 정책에 대한 태도는 핵심 항목으로 지정하여 매년 같은 문항을 통해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고 북한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참전 등으로 북핵과 한반도 통일이 남과 북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안보 문제의 일부분이라는 시각에 따라, KINU 통일의식조사에서는 미‧중‧일‧러 주변 4개국에 대한 국가 이미지, 한미동맹 및 한일관계에 대한 태도 등도 매년 조사하고 있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통일 및 외교, 안보에 대한 태도를 측정하는 것 뿐만 아니라, 매년 변화하는 국민들의 인식을 설명하기 위한 다양한 독립변수 또한 설문지에 포함되어 있는데, 이념 및 정당 지지 같은 기본적인 변수 이외에도 권위주의적 태도, 사회적 지배 성향(Social Dominance Orientation), 민족주의 및 애국주의적 성향 같은 개인 수준의 심리적 정향(psychological predispositions)을 측정하는 도구까지 포괄한다. 이에 더해 매년 발생하는 현안에 대응하기 위해 현안과 관련된 질문도 조사되고 있다. 예를 들어 2025년 조사에서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취임과 관련하여 한미 방위비 분담금 인상 가능성 등에 대한 문항이 추가되었다. 또 한국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중국혐오 문제를 추적하기 위해 중국에 대한 부정적 감정, 그리고 중국이 한국의 선거에 개입하고 있다는 음모론에 대한 수용 여부 등을 묻는 문항도 새롭게 개발하여 추가하였다.
2025년 조사 데이터와 이전 축적된 데이터를 분석하여 작성된 이 보고서의 내용을 장별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I장에서는 KINU 통일의식조사의 연구목적과 조사 개요 등을 간략히 소개한다. 그리고 다음 Ⅱ장, 「통일에 대한 인식과 태도」는 통일 담론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심대한 변화를 겪고 있음을 보여준다. 2025년 KINU 통일의식조사에서 통일의 필요성을 긍정한 비율은 49%로, 조사 도입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는 조사가 시작된 2014년 69.3%를 기록하고 2018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70.7%로 정점을 찍은 이후 계속된 하락세의 연장선이다. 하노이 북미회담 결렬, 코로나19로 인한 북한의 전면 봉쇄, 그리고 2023년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 선언은 남북 간 심리적‧제도적 단절을 심화시켰다. 윤석열 정부 시기 무인기 침투, 대북 확성기 재가동, 오물 풍선 살포와 같은 사건은 대결 구도를 선명히 했으며, 그 결과 사회적 분위기는 ‘통일보다는 관리’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이념별 추이를 보면, 2014년 조사에서는 보수층(72.1%)이 중도층(67.3%)과 진보층(69.2%)보다 통일 필요성을 더 높게 인식했으나, 2017년 이후에는 진보층이 더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2025년 결과에서도 진보층 52.3%, 중도층 48.1%, 보수층 46.6%로 나타났다. 이는 통일이 더 이상 특정 진영의 전유물이 아니라, 정치적 지형 변화와 함께 재편되는 유동적 영역임을 시사한다. 세대별로는 전쟁세대(62.1%)와 산업화세대(54.9%)에서 높았던 반면, 밀레니얼세대(38.0%)와 IMF세대(49.3%)에서 낮았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통일 필요성 인식이 약화되어 세대효과와 시대적 경험이 결합된 결과임을 보여준다.
통일의 대안으로 평화적 공존을 선호하는 비율은 2025년 처음으로 60%를 돌파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평화적 공존이 특정 진영의 논리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공통 가치로 자리 잡아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통일 방식에 대해서는 점진적‧단계적 접근을 선호하는 응답이 다수였으며, 급진적‧즉각적 통일은 소수에 그쳤다. 통일 비용 부담 문제에서는 세대별‧이념별 차이가 두드러졌다. 젊은 세대는 부담을 기피하는 경향이 강했고, 상대적으로 고연령층은 분담 의지가 높았다. 종합하면, 한국 사회의 통일 인식은 단순한 안보 프레임을 넘어 세대 경험, 정치적 서사, 남북관계의 현실적 조건이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영역임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다음 장 「북한에 대한 인식과 대북정책의 방향」에서도 북한에 대한 국민적 인식과 평가가 지난 1년간 심대한 변화를 겪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2025년 조사에서 북한을 “적대적 대상”으로 규정하는 비율이 크게 증가했으며, 반면 협력 대상으로 보는 응답은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는 북한의 연이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무인기 침투와 군사적 위협, 그리고 ‘적대적 두 국가론’ 공식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세대별로는 전쟁세대와 산업화세대가 일정 수준의 협력 가능성을 인정한 반면, 젊은 세대일수록 북한을 철저히 “위협” 혹은 “적대”로 규정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젊은 세대가 북한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를 갖는 경향은 전쟁 기억의 부재, 북한 체제의 장기적 폐쇄성, 그리고 국제 미디어 환경 속에서 축적된 북한의 부정적 이미지가 결합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이념별 차이에서도 보수층은 북한을 압도적으로 적대적 이미지로 인식했으며, 진보층에서도 협력 인식은 크게 약화되었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협력 가능성”을 긍정한 응답은 진보층 내에서도 과거 대비 크게 줄어, 이념 지형 전반에서 북한 불신이 강화된 상황이다.
흥미로운 점은 북한 정권과 주민을 구분하는 인식이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북한 정권을 불신하고 적대적으로 규정하면서도 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 필요성에는 공감하는 경향이 확인되었다. 이는 인도주의적 지원과 안보 담론을 분리하려는 사회적 흐름을 반영한다. 또한 통일 가능성에 대한 전망은 전반적으로 비관적이다. “통일은 불가능하다” 혹은 “당분간 실현이 어렵다”는 응답이 증가하며, “가까운 시일 내 가능하다”는 인식은 현저히 줄었다. 결국, 한국 사회의 북한 인식은 협력보다 불신, 기대보다 비관으로 재편되고 있으며, 이는 향후 남북관계 정책의 설계에 중대한 제약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Ⅳ장에서는 한국 안보의 근간인 한미동맹과 미국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분석했다. 2025년에는 한국과 미국의 정권교체가 동시에 이루어졌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2기 정부의 강압적 외교정책과 동맹정책은 한미관계의 미래에 불투명성을 더했다. 한국 사회의 국제‧안보 인식은 동맹 의존과 자주 역량 강화라는 이중적 과제를 동시에 반영하는 경향이 있다. 2025년 조사에서 미국에 대한 신뢰와 안보 의존은 여전히 높게 유지되었으나, 동시에 “미국의 영향력 약화”와 “중국의 부상”에 대한 인식이 병존했다. 중국의 대만 병합 시도, 선거 개입 논란 등은 한국 사회에 위기의식을 불러일으켰으며, 다수의 응답자는 중국의 팽창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일본과의 안보 협력에 대해서는 역사적 불신이 여전히 강력하게 작용하여 제한적 협력에 그치는 경향이 뚜렷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의 실재를 확인시켜 주었고, 북한 위협 인식과 직결되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주국방 역량 강화”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사회 전반에서 확산되었다. 특히 젊은 세대는 동맹 피로감과 자주성 강조를 상대적으로 더 강하게 보였으며, 보수층은 여전히 미국 중심의 안보 질서 유지에 무게를 두었다.
종합하면, 한국 사회의 국제‧안보 인식은 “동맹 기반 억지력 유지”와 “자주적 방위 역량 확충”이라는 이중적 요구를 동시에 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에 대한 의존을 유지하되, 중국‧러시아의 위협, 일본과의 제한적 협력, 그리고 국내 자주역량 강화라는 복합적 변수가 작동한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통일 및 북한 인식의 변화와도 같은 맥락에 있다고 보인다.
V장은 한국인의 대중국 및 국제관계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분석했다. 정부의 외교 기조 변화나 국제 정세보다는 개인적 성향과 역사적 국가 이미지에 의해 좌우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미국‧중국의 정권 교체나 한국 정부의 친미‧균형외교 노선에도 국민 인식은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으며, 우익권위주의(RWA), 사회지배지향성(SDO) 같은 심리적 요인이 여론 형성에 핵심 변수로 작용했다. 예를 들어 중국을 ‘야만국’으로 보는 집단은 갈등 상황에서 강경 대응을 지지했으며, 일본과의 군사동맹 문제에서는 권위주의 성향에 따라 중간 수준에서 가장 찬성률이 높고 양 극단에서는 부정적인 U자형 패턴이 나타났다. 이는 역사적 반감과 안보 현실이 교차하는 복합적 사례로 해석된다.
이번 KINU 통일의식조사는 협력적 국제주의(CI) 및 호전적 국제주의(MI) 이론을 분석에 도입했다. V장에서는 국제주의 성향 변수들이 기존 KINU 통일의식조사의 변수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해 보고 있다. V장의 분석에 따르면 국제주의 성향에 따라 협력적 국제주의 집단은 미‧중 균형과 다자협력을, 호전적 국제주의 집단은 미국 절대 동맹과 힘을 기반으로 한 개입을 선호했다. 그러나 양측 모두 미국 중심 질서에는 우호적 태도를 보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정 이슈별로도 요인이 달라, 중국의 선거 개입 의혹은 국내 정치 요인이, 대만 침공 대응 문제는 심리‧이미지 요인이 큰 영향을 미쳤다.
V장의 결론은 맞춤형 정책 소통, 대중 감정 완화, 동맹 강화와 다자협력 병행, 한일 협력의 신중한 관리, 정치 양극화 완화 필요성을 제언한다. 동시에, 국민 심리와 정체성을 반영한 대외정책이야말로 대북‧통일 정책의 성패를 결정짓는 핵심 조건임을 강조한다.
Ⅵ장에서는 한국 유권자의 핵무장 정책 선호의 원인을 정치심리학적 관점에서 분석한다. ‘알몬드-리프만 합의(Almond-Lippmann Consensus)’로 불리는 기존의 이론은 대중 여론을 외교안보 정책 결정에 무관하거나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해 왔다. 그러나 최근 연구들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중의 심리적 요인과 가치관이 외교정책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강조한다. 한국의 경우 전문가 집단은 자체 핵무장에 부정적이지만, 대중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한국도 핵을 보유해야 한다는 주장에 일관되게 높은 찬성률(60~68%)을 보여왔다. 이는 전통적인 하향식 모델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상향식 선호 형성의 사례다.
Ⅵ장의 연구는 한국 유권자의 핵무장 정책 선호가 단순한 정파나 엘리트 담론의 영향이 아니라, 개인의 정치심리적 성향—특히 호전적 국제주의(MI)와 협력적 국제주의(CI)—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밝힌다. 또한 MI와 CI가 개인의 가치정향과 연결되는 방식, 그리고 그 관계가 대북정책, 특히 핵무장 정책에 대한 선호를 설명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이 연구의 목적이다. 이를 위해 Ⅵ장에서는 우선 Schwartz의 가치이론에 따라 MI가 보수‧자기고양 가치, CI가 보편주의‧자기초월 가치와 연관될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검정했다.
결과적으로, CI 성향이 강한 응답자들은 보편주의 가치를 가질 확률이 높았으며, 이는 다시 협력적 외교 성향을 강화했다. 그러나 MI와 보수주의적 가치는 기대와 달리 약한 상관관계를 보였다. 오히려, MI는 자기고양 가치와 연관되어 강경한 핵정책 지지로 이어졌고, 북핵 위협을 더 심각하게 인식하는 경향을 보였다. 반면 CI는 북핵 위협 인식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지 않았으나, 독자 핵무장 지지를 완화하는 효과를 나타냈다. 전반적으로, MI 성향이 강한 유권자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한국도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는 주장에 찬성했고, CI 성향이 강한 집단은 경제‧외교 비용을 고려해 신중론을 택하는 경향이 발견되었다.
결론적으로, 한국인의 핵무장 여론은 단순한 정치적 이념이나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내집단 보호와 보편주의 가치 간의 심리적 균열 위에서 형성된다는 것을 Ⅵ장은 보여준다. 이는 한국 외교정책의 민주적 기반이 심리적 가치 구조에 의해 제약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도달한 결론 및 정책 제언은 다음과 같다. 2025년의 한반도와 세계는 냉전 이후 가장 복합적인 안보 환경에 직면하고 있다. 북한은 2023년 이후 ‘적대적 두 국가론’을 선언하고 핵전력을 헌법적 지위로 격상시켰으며, 군사 도발의 빈도를 높이고 있다. 거의 동맹 수준으로 심화된 러시아와 북한의 관계는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 제재를 사실상 무력화시켰으며, 심화된 미중 경쟁으로 인해 앞으로도 대북제재가 다시 복원될 가능성은 요원해 보인다. 한편, 국내 정치에 있어서도 한국은 극심한 혼란과 변화를 겪고 있다. 2024년 12월 갑작스러운 비상계엄 선포로 7개월간 사실상의 무정부 상태가 지속된 한국은 2025년 6월 4일 대통령 선거를 통해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가까스로 정상화 궤도에 올라섰다. 이재명 대통령은 당선 직후부터 북한과의 대화와 협력 의지를 강력히 표방하면서, 9월 유엔총회 연설에서는 END(Exchange(교류), Normalization(관계정상화), Denuclearization(비핵화)) 이니셔티브를 천명하면서 윤석열 정부의 8.15 통일 독트린을 부정하고 전통적인 민주당 정부의 평화번영 정책으로 회귀했다.
이러한 내외부적 변화 속에서 KINU 통일의식조사 2025는 단순한 여론조사가 아니라, 국민 인식의 구조를 연구하여 국가 정책의 정당성과 지속가능성을 점검하는 정치심리적 기초자료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2025년의 조사결과는 ‘통일’보다 ‘평화’에 대한 선호가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주며, 국민이 “통일보다는 안정된 관리”를 더욱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이는 이재명 정부의 평화‧안보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다음과 같은 시사점과 함의를 제공한다.
□ 국민 개인의 삶과 평화를 연결하는 정책과 내러티브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0년 베를린 선언에서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정책은 당장 통일을 추구하기보다는 한반도에 아직도 상존하고 있는 상호위협을 해소하고 남북한이 화해‧협력하면서 공존‧공영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통일은 그 다음의 문제입니다(김대중 2000.3.9.)”라고 언급한 바 있다.
2025년 KINU 통일의식조사는 통일이 필요한가에 대한 회의감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통일 같은 급격한 변화보다는 현상 유지와 평화적 남북관계에 대한 관리를 선호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경향은 2014년 조사가 시작된 이후 지속적으로 발견된 것이지만, 2025년에는 그 변화의 속도가 한결 빨라지는 현상이 관찰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개인의 삶과 한반도의 평화와 안보를 연결 짓는 관점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즉, 민족주의적 이념의 목표로 개인의 삶과 유리된 통일을 강조하는 것보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보가 개인의 삶의 질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강조하는 정책 언어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더 이상 통일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보다, 남북의 화해와 협력, 그리고 이를 통한 평화가 개인의 삶에 구체적으로 어떠한 이익과 복지를 가져올 지를 강조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 통일 이념 지형의 변화를 반영하는 정책 필요성
변화하는 국제 정세와 불안한 남북관계는 국내정치 이념 지형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국내의 진보적 시민들은 여전히 남북의 평화적 공존을 지지하지만, 동시에 북한에 대한 불만과 불신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마찬가지로 보수적 시민들은 대북 억지와 제재를 선호하지만, 대화를 통해 군사적 긴장을 줄여야 할 필요성도 인정하고 있다. 이는 기존의 ‘보수=대결, 진보=대화’라는 구도가 약화되고 있으며, 좀 더 실용주의적 남북관계 인식이 확산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국익 중심의 실용주의 외교”를 표방하는 이재명 정부의 기조와도 접점이 있다.
따라서, 이재명 정부는 진보층과 보수층에 대한 설득 전략을 새로운 이념 지형을 고려하여 재구축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한국의 진보 블록은 민족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북한과의 관계 회복 그 자체를 선호한다는 인식은 이제 현실에 잘 부합하지 않는다. 이제 진보 시민들도 북한과의 화해와 평화가 한국의 민주주의와 경제에 어떠한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인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전통적인 민주당 정부의 대북정책에 진보 시민들이 무조건적 지지를 보낼 것이라는 안이함을 버리고, 좀 더 실용적인 설득 전략을 구축해야 한다.
반면, 보수층이 북한에 대한 강경 대응과 적대적 전략을 무조건 선호한다는 인식도 이제 시효가 만료되었다. 그들이 상대적으로 대북 억지와 제재를 선호하는 것은 사실이나, 이는 어디까지나 진보층과의 비교에서 그렇다는 의미이다. 보수층 유권자도 북한과의 관계를 대화를 통해 원만하게 해결하는 것을 선호한다는 것을 KINU 통일의식조사는 오래전부터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재명 정부는 현재 정부가 표방하는 북한과의 대화 시도를 보수층이 반대할 것이라고 선입견을 가질 필요가 없다.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왜 현 정부의 정책이 옳은 방향인지를 설득한다면, 보수층은 최소한 명시적인 반대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 ‘통일보다는 평화’로의 전환
마찬가지로 KINU 통일의식조사는 오래 전부터 국민의 다수가 “통일에 대해 원칙적으로 지금은 시기상조”라고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이는 단순히 통일과 북한 문제에 대한 무관심이 아니라, 불안정한 평화 속의 현실주의적 감각을 반영하고 있다고 해석해야 한다. 위에서 인용한 김대중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은 2000년에 나온 것이지만, 그 상황에 대한 판단과 해법은 2025년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1990년대와 2000년대의 여론에서는 통일 필요성에 대한 동의가 지금보다 훨씬 높았지만, KINU 통일의식조사는 이제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국민들이 김대중 대통령의 통찰에 동의하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재명 대통령은 2025년 유엔총회 연설에서 ‘평화 공존과 공동 성장’을 한반도 정책의 새로운 목표로 내세우면서 김대중 대통령의 한반도 인식을 이어받고 있음을 확실히 했다. 통일 담론을 강조하면서 군비경쟁의 위험을 무릅쓰고 북한에 대한 강압을 지속하던 이전 정부의 정책을 탈피하고, 이재명 정부의 한반도 정책은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는 것에 첫 번째 목표를 두면서 위기를 관리하고 평화 유지하는 것을 중심으로 대북 정책을 재구조화할 것임을 천명한 것이다. 이러한 정책 전환은 국민들의 통일과 북한에 대한 인식의 변화 방향과 맞물리고 있음을 KINU 통일의식조사는 다시 한 번 확인시켜 보여주고 있다.
□북한에 대한 부정적 시각과 평화 전략의 조화
2024년 12월 계엄령 선포 이후 북한은 오히려 한국에 대한 도발 수위를 전보다 자제하는 경향을 보였다. 2024년에 한국과 북한은 상대방을 향해 쓰레기 풍선과 대북 전단, 확성기 방송 등 심리전 수단을 동원하여 휴전선의 긴장이 강화되고 있었다. 급기야 윤석열 정부는 평양 시내에 무인기를 띄우는 도발적인 수단까지도 사용하는 데 이르렀다. 하지만 계엄 이후 북한은 쓰레기 풍선을 자제하고 한국 쪽에서 먼저 대북 방송을 중단하자 이에 소극적이나마 호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따라서 2025년에 한국과 북한의 군사적 긴장과 갈등은 이제 현 수준에서 동결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계속되는 핵무력 증강, 러시아와의 군사적 연대 강화와 위협적인 외교 용어 사용은 한국 국민의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인식 강화로 이어졌다. 북한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고 있으며, 북한을 협력의 파트너로 보는 비율이 역대 최저로 조사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적 인식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북한과의 평화적 대화와 교류를 통해 남북 간의 교착 상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즉, 북한에 대한 불신과 부정적 감정이 강압과 봉쇄 정책으로 이어지기보다는 관여정책에 더 호응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관여 정책 사이의 균형이 얼마나 안정된 것인지는 더 많은 연구를 통해 밝혀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이재명 정부의 현 대북정책에는 하나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남북관계가 현 단계에서 더 악화된다면 관여정책에 대한 선호가 사라지거나 약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므로, 정부 임기 초기에 재빠른 대응으로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의 기틀을 다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KINU 통일의식조사 2025는 국민이 더 이상 ‘통일’ 자체보다 평화의 지속가능성을 중시함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는 냉전적 통일 서사에서 ‘포용적 평화관리체제’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재명 정부는 스스로 천명한 바와 같이 ‘실용주의적 국익 중심 외교’라는 틀 위에서 국내의 세대와 이념 갈등을 봉합할 수 있는 ‘통합형 안보정책’을 정립해야 한다. 미중 전략적 경쟁이 강화되면서 동시에 미국의 동맹국에 대한 경제적‧정치적 요구 또한 심화되는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다자주의 기반의 중견국 평화외교’ 목표 또한 소흘히 해서는 안된다. 국민의 인식 변화는 이미 정책 방향을 선도하고 있음을 KINU 통일의식조사는 보여주고 있으며, 정부의 역할은 이를 제도적‧외교적 현실로 구현하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2025년 유엔 총회 연설에서 언급한 것처럼, 평화는 단지 전쟁의 부재가 아니라, “다름을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실현(이재명 2025.9.24.)”하는 것이다. 평화를 통해 우리는 신뢰와 협력, “함께하는 더 나은 미래(Better Together)”의 구조적 조건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지금 한국이 감당해야 할 역사적 책무다.
(출처: 통일연구원)
목차
요약 13
ChapterⅠ
KINU 통일의식조사
1. KINU 통일의식조사 소개 29
2. 2025년 KINU 통일의식조사 개요 32
3. 보고서의 구성과 요약 35
ChapterⅡ
통일에 대한 인식과 태도
1.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여론 43
2. 평화적 공존에 대한 여론 46
3. 적대적 공존에 대한 여론 50
4. 통일에 대한 새로운 정의: 협력적 공존으로서의 통일에 대한 여론 56
5. 통일 이익: 국가 59
6. 통일 이익: 개인 63
7. 통일 이익: 북한 주민 66
8. 통일의 중요성 69
9. 통일과 개인의 삶 73
10. 소결 77
ChapterⅢ
북한에 대한 인식과 대북정책의 방향
1. 북한에 대한 관심과 이미지 83
2. 김정은 정권에 대한 신뢰도와 안정성 평가 90
3. 북핵 위협 및 핵 전쟁 가능성 94
4. 북한의 두 국가론에 대한 반응 101
5. 대북정책의 방향 109
6. 소결 120
ChapterⅣ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와 한미관계
1. 문제 제기 125
2.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에 대한 인식 128
3. 한미관계 평가와 전망 133
4. 한미동맹의 핵심 사안에 대한 인식 138
5. 미중관계에 대한 인식과 한국 외교 149
6. 북미정상회담 157
7. 소결 162
ChapterⅤ
변화하는 한국인의 중국 및 국제관계에 대한 인식과 태도
1. 서론 167
2. 외교정책에 대한 여론의 형성: 상향식 접근(Bottom-Up Approach) 169
3. 대중국 인식과 태도 173
4. 국제관계에 대한 태도 193
5. 소결 208
ChapterⅥ
핵무장 정책 선호의 정치심리 기반: 호전적 국제주의와 협력적 국제주의
1. 서론 213
2. 이론적 배경 216
3. 경험적 분석 227
4. 소결 248
ChapterⅦ
결론 및 정책제언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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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U 통일의식 조사 2025: 협력적 국제주의와 호전적 국제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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