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천호(전 국립기상과학원장)
우리는 대가를 제대로 치르지 않고 탄소를 배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탄소 배출로 인해 기후위기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현재의 화석연료 가격으로는 저탄소 방식을 추구하도록 유도하지도, 고탄소 방식을 막도록 억제하지도 못한다. 화석연료 가격에 화석연료가 기후에 미치는 피해인 ‘외부비용’이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탄소 가격'이 기후위기에 대처하는 해법이라고 주장한다. 즉, 기업과 소비자에게 온실가스 배출량에 따라 비용을 매김으로써 스스로의 행위에 책임질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물건이 비싸지면 그만큼 소비자는 사지 않으려 하고 기업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려 노력할 것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탄소시장이 확대되면서, 시장 기반의 온실가스 규제가 더욱 강화되고 있다. 우리 스스로 온실가스를 줄이지 않으면 비자발적으로 감축을 강요당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탈탄소는 선택이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 참여하기 위해 반드시 따라야 하는 국제 경제 질서이자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탄소세와 탄소 배당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탄소세가 탄소 배출 저감을 위한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수단인 동시에 경제적 악영향이 적다는 데 동의한다. 그럼에도 많은 국가의 정치인들은 유권자의 반발을 우려하여 탄소세 도입을 꺼린다. 더 큰 문제는 탄소세로 인해 화석연료 가격이 상승하면, 저소득층이 상대적으로 더 고통받는 ‘역진(逆進)’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탄소세는 취약계층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공정한 방식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나아가 탄소세로 거둬들인 공적 자금은 ‘탄소배당(Carbon Dividend)’을 통해 시민 모두에게 공평하게 나누어야 한다. 이를 통해 에너지 소비가 많은 고소득층보다 에너지 소비가 적은 저소득층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는 기후위기와 불평등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방안이 될 뿐만 아니라, 탄소세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
스웨덴은 1991년 세계 최초로 탄소세를 도입하면서 그 공적자금으로 소득세 감면을 병행했다. 처음에는 이산화탄소 1톤당 탄소세 25달러에서 시작해 최근 126달러로 상승했다. 그동안 스웨덴의 GDP는 60% 이상 증가했지만,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5% 감소했다. 스위스와 오스트리아는 탄소세를 기본소득 재원으로 사용한다. 스위스에서는 탄소 배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정부가 탄소세를 인상한다. 탄소 배출 저감 성과에 따라 탄소세를 책정함으로써 세금의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다. 10년 동안 탄소세가 8배나 인상되었지만, 탄소 배당 덕분에 시민들의 저항이 일어나지 않았고, 난방용 에너지 소비는 28.1% 감소했다. 오스트리아는 대중교통 취약 지역에 더 많은 탄소 배당을 하고 있으며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배당 확대도 계획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탄소 배당을 통해 탄소 배출을 줄이는 동시에 사회적 지원을 강화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정책 효과가 큰 만큼, 탄소세와 탄소 배당을 더욱 확대해 더 많은 탄소 감축과 공정한 분배를 실현하려 한다.
배출권거래제

유럽연합은 2005년에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했으며, 이를 통해 2019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35% 감소시켰다. 그러나 배출권거래제는 본질적으로 누군가의 감축이 다른 누군가의 배출 증가로 이어질 수 있도록 설계된 만큼 그 한계가 명백한 제도다. 기업들은 운영에 필요한 탄소 배출권을 무상으로 할당받으며, 사용하고 남은 배출권은 거래를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다. 2022년 태풍으로 인해 포스코의 철강공장이 침수되면서 가동이 일시적으로 중단되었던 일이 있다. 공장 가동 중단으로 약 550만 톤의 온실가스 배출이 감소했으며, 당시 포스코는 남은 배출권을 판매해 311억 원의 이익을 얻었다. 우리나라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10%를 차지하는 기업이 기후변화를 유발하면서도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제도이다.
실제 배출권거래제는 부실하게 운용되고 있다.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 중 배출권 가격이 적용되는 비율은 5분의 1에 불과하며, 우리나라에서도 그 효과가 거의 미미한 수준이다. 그 주된 이유는 지나치게 높은 온실가스 배출 허용 총량과 배출권 무상 할당 비율 때문이다. 마치 정부가 쓰레기 종량제 봉투를 무료로 대량 제공하면, 쓰레기를 줄일 유인이 사라져 쓰레기 종량제가 무의미해지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이렇게 되면 시장의 가격 기능도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해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약화될 수 밖에 없다.
탄소국경조정제도

우월한 경제적 입지를 가진 탄소 수입국들은 탄소 수출국에 압박을 가할 수 있는 탄소 장벽을 세우려 한다. 대표적으로 유럽연합은 국가 간 무역에서 제품에 포함된 탄소 비용 차이를 관세로 조정하는, 이른바 ‘탄소국경조정제도(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CBAM)’를 2026년부터 시작할 예정이다. 이 제도는 해외에서 생산된 제품이 유럽연합의 탄소 감축 수준에 미치지 못할 경우, 그 차이에 상응하는 비용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반면, 해외 기업이 자국에서 이미 탄소세나 배출권거래제를 통해 탄소 배출 비용을 지불한 경우, 유럽연합의 수입 업체는 탄소 가격 비용을 공제받을 수 있다.
CBAM이 배출권거래제와 연계되어 실행될 경우, 우리나라에는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탄소배출권 가격은 우리나라에서 1톤당 1∼2만 원 수준이지만 유럽연합에서는 10만 원대로 훨씬 높다. 이에 유럽연합은 우리나라와의 탄소배출권 가격 차이만큼 관세를 부과하려 한다. 우리나라 수출 주력 상품이 탄소 관세 대상이 되면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될 수 있다. 우리나라 탄소배출권 가격이 유럽연합과 동일하다면 관세 부담이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관세를 내면서까지 수출을 지속할 경우, 국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자금이 유럽연합으로 유출되는 비효율적인 상황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한편, CBAM은 표면적으로 탄소 배출 감축을 목표로 하지만, 그 이면에는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는 유럽연합의 전략이 숨겨져 있다. CBAM은 유럽 기업들이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탄소 규제가 느슨한 해외로 생산시설을 이전하는 탄소 누출(Carbon Leakage)을 방지하는 효과를 가진다. 미국과 일본 또한 CBAM 도입을 추진하면서 이 제도가 국제 무역 갈등의 핵심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CBAM을 통해 우리나라처럼 탄소 규제가 상대적으로 느슨한 국가에서 생산된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는 것을 차단하고,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대한민국은 이러한 견제에 대비해 더욱 신속하고 전략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그린 뉴딜, 트럼프 재등장과 중국 부상

바이든 대통령은 인플레이션 감축법(U.S. Inflation Reduction Act, IRA)을 통해 기후 관련 자국 산업을 육성하며 그린 뉴딜을 실현하려 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장벽을 강화해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기후․에너지 컨설팅 회사인 로듐 그룹은 트럼프 대통령 재등장시 온실가스 배출량 변화에 대한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현행 정책이 유지될 경우, 미국은 2030년까지 2005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32~43% 감축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 공약대로 IRA를 폐지하고 온실가스 감축 정책을 후퇴시킬 경우, 감축률이 23~34%로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캘리포니아와 뉴욕 등 24개 주지사는 연방정부의 결정과는 달리 강력한 기후위기 대응 정책을 지속하겠다고 결의했다. 또한, IRA의 혜택을 크게 받는 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IRA 인센티브 유지를 위해 적극적인 로비를 벌이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탄소국경세 도입을 검토하고 있으며, 이는 자국 내 탄소 규제를 완화하더라도 탄소 규제가 오히려 자국 산업을 보호할 수단과 명분이 될 수 있다면 이를 활용하겠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그린 뉴딜과 관련하여 유럽연합은 2022년 '리파워 유럽(REPowerEU)계획'을 발표하며, 2030년까지 3,000억 유로를 투자해 러시아산 가스 의존에서 벗어나겠다고 선언했다. 2023년 발표한 '넷 제로 산업법(Net-Zero Industry Act)'에서는 탈탄소 전략산업의 제조 역량을 유럽연합 수요의 40%까지 올리는 목표를 설정했다. 한편, 일본은 '녹색전환(GX) 계획'을 추진하고 있으며, 중국도 이와 유사한 전략을 통해 기후변화 대응을 산업 정책에 반영하려 한다.
2025년 미국이 파리협정 탈퇴를 선언하면서 전 세계 기후 대응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미국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국제적 지도력을 스스로 포기함에 따라, 현재 유엔이 목표로 하는 2050년 탄소 중립 달성은 어려워질 전망이다. 이러한 글로벌 기후 리더십 공백 속에서 중국이 부상하고 있다. 세계에너지기구(International Energy Agency, IEA)의 전망에 따르면, 중국은 2025년 초에 온실가스 배출량 정점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되며, 2030년까지 기후변화협약(United Nations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 UNFCCC)의 목표에 따라 재생에너지 용량을 3배로 늘릴 가능성이 높다. 현재 중국은 재생에너지 투자 및 확대 측면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2023년 중국은 청정에너지 분야에 2,730억 달러를 투자했으며, 이는 뒤를 이은 유럽의 투자 규모의 두 배에 달한다. IEA에 따르면 2023년 중국의 재생에너지 투자는 전 세계 투자의 3분의 1을 차지했으며, 같은 해 설치한 태양광 설비 용량은 2022년 전 세계 태양광 설비 용량과 맞먹는다. 또한 중국의 풍력 설비 용량은 66% 증가했으며, 전 세계 신규 전기자동차 등록의 약 60%가 중국에서 이뤄졌다. 중국은 재생에너지와 전기자동차 시장에서 독보적인 지배력을 확보하고 있다. 반면, 유럽 국가들은 재생에너지와 전기자동차 산업에서 기술우위를 확보하여 시장을 주도하려 했으나, 중국의 급격한 성장으로 인해 차질을 빚고 있다. 이에 따라 일부 유럽 국가들은 전기자동차 산업 확대 목표를 조정하거나 후퇴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공동체의 규범과 가치를 지향하는 제도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사람들은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막대한 편익을 누려왔지만, 경제적 여건이 열약한 사람들은 온실가스 배출 책임이 상대적으로 적음에도 불구하고, 기후위기의 영향을 더욱 심각하게 받고 있다. 그러나 화석연료를 태워 만든 상품 가격에는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 비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측면에서, 탄소세를 통한 탄소 배당은 탄소 배출로 인해 발생한 기후위기 피해에 대한 일종의 배상이라 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우리는 조금 더 공정한 사회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앞으로 어떤 에너지를 사용하여 상품을 생산할 것인가가 기업 경쟁력의 핵심 요소가 될 것이다. 이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다면, 탄소시장이라는 비바람에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들보다 먼저 경제적 타격을 받을 위험이 크다. 이는 우리나라가 식량, 자원, 에너지를 자급자족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이 절실해질수록 세계 탄소시장의 압박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탈탄소는 세계 시장의 진입 장벽이기도 하지만 이를 극복하면 기업 경쟁의 전략 무기가 될 수 있다. 국가의 생존 차원에서 탈탄소 전환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인 과제가 되었다.
시장 기반의 탈탄소 제도가 부적절하게 시행되면, 중세 시대의 면죄부처럼 기능할 위험이 있다.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를 돈으로 배상할 수 있게 된다면, 도덕적 책임 없이 기후 파괴적 행동을 지속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결국, 시장이 사회의 규범과 가치를 훼손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시장 제도는 탈탄소를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시장 제도를 통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단기간 내에 효과적으로 탈탄소 전환을 이루는 것은 중요하지만,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공동체의 규범과 가치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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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전 세계 경제질서가 된 탈탄소 제도 - 탈탄소는 우리나라 스스로 정한 과제가 아니다ㅣ조천호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