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당면한 인구위기
우리 대한민국 공동체는 매우 심각한 인구학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합계출산율 1.0 미만의 극단적 저출산이 수년째 지속되고 있고, 출생아 수 감소가 누적되면서 세계에서 유례없이 빠른 속도의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노인의 수 증가에 따라 사망자의 수가 태어나는 아이의 수를 넘어서면서 이미 인구감소 국면에 진입하였고 이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여기에 더해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는 줄어든 청년 인구를 만회하기 위해 지방의 청년을 더욱 강하게 흡수하고 있고, 그 결과 지방 지역들은 인구감소와 고령화, 지역쇠퇴가 중첩된 인구위기를 겪으며 구조적 악순환에 빠져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출생아 수가 소폭 반등하면서 이러한 인구 위기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다소 완화된 듯한 분위기도 감지된다. 그러나 최근의 출산 지표 개선이 중장기적 추세 전환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근거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현재의 출생아 수 증가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동안 미뤄졌던 출산이 재개된 효과와 혼인율의 일시적 회복이 일정 부분 작용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반면 젊은 20대 청년세대의 출산율 수준은 팬데믹 이전보다 더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으며, 미뤄졌던 출산의 재개 역시 머지않아 한계에 도달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지금의 반등을 장기적인 삶의 안정과 양육 환경의 구조적 개선이 이루어진 결과로 보기는 어렵다는 사실이다. 또한 이조차도 앞으로 5년 정도 후엔 주된 출산 연령기 청년인구가 급감하여 출산율이 어느 정도 오른다고 하더라도 출생아 수는 다시 감소할 것이다.
2. 인구담론 구성의 필요성
지금의 인구문제는 단기간에 형성된 현상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우리 사회가 축적해 온 구조적 문제가 쌓여 만들어진 결과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문제 해법을 제대로 찾는다고 하더라도) 문제의 해결 역시 매우 오랜 기간이 걸릴 것이다. 오히려 지금과 같이 단기적이고 단편적인 출산율 상승 신호에 연연하고 희망적 기대를 거는 것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인구문제에 대한 분석 이전에, 우리 사회가 인구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인구를 둘러싼 사회적 담론이 어떠한 전제 위에서 형성되어 있는지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저출산과 고령화, 인구감소와 지방소멸은 왜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떤 원칙과 관점으로 이 문제에 대응해야 하는가 – 이러한 근본적 문제에 대한 사회적 답안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러한 공통의 인식 기반이 마련되지 않는 한, “저출산은 축복”이라거나 “대한민국의 인구는 끝났다”, 혹은 “저출산은 정부와 청년 인식의 탓”과 같은 단정적이고 무책임한 주장들은 반복해서 등장할 수밖에 없다.

3. 인구위기 = 청년의 구조적 위기
많은 인구문제의 근원에 놓여 있는 저출산은 청년들의 현재 어려움에 대한 반응이나 태도의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들이 그들의 생애 과정 속에 누적되며 나타난 결과로 보아야 한다. 청년들이 직면한 불안정한 일자리와 주거 문제는 독립과 가족 형성을 가로막고 있으며, 계층 간 격차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과도한 사교육 경쟁과 불안을 낳아 출산을 더욱 주저하게 만든다. 성장 과정에서 경험한 입시 경쟁의 압박, 행복한 가족 경험의 부재, 다양한 형태의 차별과 배제의 경험들은 성인이 된 청년들의 생애과정 선택 전반을 가로막는 구조적 장애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결국 지금의 인구위기는 대한민국 청년의 삶의 위기에서 비롯되었으며, 이 위기가 어떠한 사회적 구조에 의해 만들어지고 재생산되고 있는지를 논의해야만 해법의 실마리가 드러날 수 있다. 다시 말해, 인구문제에 대한 대응은 개별 사업들의 확장이 아니라 사회구조 전반에 대한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4. 단기 지원사업의 성과 기대
지난 정부의 저출산 정책은 출산 가능성이 높은 신혼부부를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에 치중해 왔다. 극단적 저출산이라는 위기의식 자체에는 공감할 수 있지만, 이러한 접근이 과연 우리 사회가 선택해야 할 적절한 해법이었는지에 대해서는 필자는 동의하기 어렵다. 단기적 지원 사업과 즉각적인 성과에 집착하는 정책 운영은 오히려 인구위기를 만들어내는 구조적 요인을 방치하는 결과를 낳는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사실상 단기 대응 사업개발을 위한 ‘특임 기구’처럼 운영되면서 위원회로서의 위상과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의 정책적 권위가 약화된 것은 이러한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렇다고 지금 우리의 인구 논의가 지난 인식보다 분명히 진전되었는가에 대해서도 자신 있게 긍정하기는 어렵다. 여전히 인구문제에 대한 논의의 중심은 개별 정책 사업과 예산 규모에 머물러 있다. 부동산 정책을 단순한 가격 안정의 문제를 넘어 청년의 삶과 지역 소멸의 문제로 연결해 논의할 수는 없는가, 교육 개혁을 입시 제도의 조정이 아니라 미래 세대를 어떻게 양육할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재구성할 수는 없는가, 지방대 문제를 대학의 존속 여부가 아니라 지역 청년을 위한 지역 혁신의 관점에서 다룰 수는 없는가 등의 확장된 질문들은 여전히 충분히 제기되지 못하고 있다.
인구정책(population policy)의 역할을 확장하면 우리는 기존의 저출산 정책 프레임으로는 다룰 수 없었던 새로운 과제들과 마주하게 된다. 지방소멸의 구조적 대응, 혼인과 출산의 계층화, 인구감소로 예상되는 미래 위기에 대한 전망과 선제적 대응 필요성 등은 출산율 제고만을 목표로 설정해 온 기존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과 기본계획 체계에서는 문제로조차 충분히 인식되지 않았던 사안들이다.

5. 미래 위기에 대한 선제적 대응(적응정책)
우리 공동체는 인구문제 대응뿐만 아니라, 인구감소와 고령화가 불가피하게 초래할 미래 사회의 변화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출생아 70만 명 시대에 설계되어 만들어진 사회 시스템은 출생아 25만 명 시대에는 더 이상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없다.
우리는 급격히 줄어드는 학령인구에 맞추어 대학 정원과 고등교육 구조를 전면적으로 재편해야 하며, 동시에 인구 감소를 전제로 한 새로운 국방 시스템을 다시 설계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 과정에서 지방대 정원 조정만이 아니라 수도권 대학 정원 역시 과감하게 축소할 수 있는 정치적·사회적 결단이 가능할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국방 개혁 역시 병력 규모 축소와 군 구조 고도화를 병행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데, 이를 위해 필요한 재정 투입을 감당하고 군 체계 혁신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육·해·공군 간 이해관계의 충돌을 합리적으로 조정해 낼 수 있을지도 중요한 쟁점이다.
또한 노동력 감소를 기술 혁신으로 흡수하기 어려운 운수업이나 건설업과 같은 산업 부문에서 발생하는 생산성 격차와 산업 간 불균형을 어떻게 완화할 것인지, 이러한 산업 구조의 차이가 노동시장 격차와 계층 간 불평등으로 고착화되는 흐름을 어떻게 차단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시작해야 한다. 기술 투자와 자동화의 중요성이 커질수록 자본 소득의 비중이 확대되어 계층 간 격차가 오히려 심화될 가능성은 없는지도 점검이 필요하다. 또한 인구와 가구 수가 모두 감소하는 시대에도 세대 수의 지속적 확대를 전제로 해 온 아파트 재건축 방식이 과연 지속 가능한지, 주거 정책과 도시 구조를 어떤 방향으로 전환해야 하는지도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외국 인력의 도입 역시 단순히 현재의 인력 부족을 보완하는 수단에 머무를 것인지, 아니면 축소 사회에 적합한 고생산성 산업 구조로 전환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요구된다.
앞으로 고령화와 인구감소가 심화할수록 계층 간, 지역 간, 세대 간 격차는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크며, 축소 사회로의 전환 과정에서 사회적 갈등 역시 구조화될 것이다. 이러한 갈등과 정책 자원의 제약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의 대응 역량을 약화시키고, 공동체 전체의 위기 회복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의 인구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노동력 부족이나 성장률 둔화, 국가 재정 문제와 같은 경제적 지표에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다. 인구를 경제발전의 하위 변수로만 인식하는 한, 인구문제를 종합적인 사회정책의 영역으로 확장하기는 어렵다.

6. 경제학적 인구 프레임 극복과 인구전략의 담론 구성
이러한 확장 한계의 배경에는 인구를 비용과 효율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경제학적 프레임이 자리하고 있다. 그간의 저출산 정책은 출산과 양육을 비용의 문제로 환원해, 부모가 부담해야 할 출산·양육의 총비용을 낮추면 출산율이 회복될 것이라는 가정에 기반해 설계되었다. 개별 정책의 효과가 미미하더라도 이를 누적하면 결국 출산율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정책은 점점 백화점식 나열로 확대되었다. 또한 출산이라는 복합적 사회 현상에서 개별 정책의 효과를 명확히 분리해 측정할 수 있다는 데이터 방법론적 믿음(정책영향 평가) 역시 이러한 프레임에서 비롯되었다. 그 결과 비용 대비 성과를 측정할 수 없는 사회 구조적 문제들을 다루려는 시도는 정책의 주변부로 밀려나게 되었다.
이제 인구정책의 위상과 역할은 한층 더 확대되어야 한다. 인구문제는 단순한 복지 지원을 넘어 사회 전반의 정책 기조와 결합된 미래 전략으로 다뤄져야 한다. 지정학적 세계 질서의 변화, 기후 위기, AI로 대표되는 기술 혁신 등 구조적 전환의 흐름 속에서도 미래의 인구 대응 전략을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 비용 절감을 중심으로 한 복지 확대 전략에서 벗어나, 혁신 기술과 사회 시스템 전환을 포함하는 인구전략(demographic strategy)으로의 전환이 요구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구담론이 다루는 시간적·공간적 범주 역시 더욱 넓어져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인구문제에 대한 위기의식은 분명히 높아졌지만, 인구에 대한 이해가 그만큼 깊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게 인구에 대한 오해와 잘못된 개념과 지표들이 널리 통용되고 있다. 인구에 대한 바른 사실 이해가 갖춰져야, 인구에 대한 바른 개념을 세울 수 있고, 인구에 대한 바른 개념 위에서 인구에 대한 담론을 고도화할 수 있다.
이제 인구정책은 무엇을 더 지원할 것인가의 차원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의 구조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논의로 확장되어야 한다. 이 과정은 불가피하게 이해관계의 조정과 사회적 갈등을 수반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갈등이 본격화되기 이전에, 인구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원칙을 사회적으로 합의하는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는 빠른 인구 변동의 과정 속에서 어떻게 보다 민주적인 인구담론을 형성할 것인지, 인구 대응의 원칙에 대해 어떠한 사회적 합의를 이룰 것인지,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어떠한 입법이 필요한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경제주의적 프레임에서 벗어나 우리 공동체의 통합과 위기 회복력을 강화하기 위한 종합적 사회정책으로서 인구문제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어떤 정책을 더 만들어낼 것인가가 아니라, 이러한 전환을 가능하게 할 어떤 정치가 필요한가를 묻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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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당면한 인구위기
2 인구담론 구성의 필요성
3 인구위기 = 청년의 구조적 위기
4 단기 지원사업의 성과 기대
5 미래 위기에 대한 선제적 대응(적응정책)
6 경제학적 인구 프레임 극복과 인구전략의 담론 구성
해시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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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_인구위기 특집⑤] 인구전략 전환을 위한 인구담론 구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