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환 홍익대학교 전자전기공학부 교수
우리나라에서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2030년까지 전기에너지 사용량의 20%를 재생에너지로 달성하겠다는 “3020 정책”을 제시한 시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벌써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동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여전히 더 큰 난관들이 남아 있다.
2050 탄소중립을 위한 에너지전환은 크게 세 방향에서 이뤄져야 한다. 첫째는 산업과 가정에서 쓰는 전기를 화석연료에서 재생에너지로 바꾸는 것이다. 둘째는 교통 분야에서 자동차가 쓰는 화석연료를 전기에너지로 바꾸고, 선박이나 항공기의 연료를 탄소중립이 가능한 바이오연료로 바꾸는 것이다. 셋째는 산업 분야에서 쓰는 열을 화석연료가 아닌 전기나 수소를 이용한 에너지로 바꾸는 것이다. 이 중 온실가스 배출량 비중이 가장 많고, 그래서 감축 잠재량도 많은 것이 전환(발전)* 부문이다. 그래서 가장 우선 추진해야 하는 것이 화석연료 발전의 재생에너지 전환이다.
*전환(발전): 전기를 생산하거나 열을 공급할 때 사용하는 에너지원을 화석연료에서 비화석·무탄소 에너지로 바꾸는 활동 자체

유럽은 이미 25년 전부터 전력 분야에서 본격적인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전환을 달성해 오고 있으며, 영국, 독일, 스페인뿐 아니라 미국의 캘리포니아주도 이미 재생에너지 비율이 50%를 넘어서고 있다. 그 과정에서 남호주, 영국, 그리고 최근 스페인에서도 대정전을 경험했으며, 특히 스페인의 정전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다. 에너지전환 후발 주자인 우리나라는 우리보다 앞선 선발국들이 남긴 교훈을 충분히 학습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 하며, 우리 전력 시스템의 고유한 특성을 잘 분석해 안정적인 전력 공급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차질이 없도록 해야 한다.
우리나라 전기에너지의 안정적인 공급에 지장을 줄 수 있는 몇 가지 특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좁은 국토에서 많은 전기에너지를 쓰고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에너지 밀도*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전기에너지를 송전하면서 발생하는 전력손실이 적어서 효율이 높다는 장점이 있지만,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 DC(직류, Direct Current) 전력을 AC(교류, Alternating Current) 전력으로 변환하는 인버터(DC/AC 전력변환장치, 컨버터라고도 한다)의 밀도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재생에너지가 많아지면서 인버터의 간섭 현상*에 의한 전력 불안정 현상이 중요한 문제로 보고되고 있다. 특히 지난 4월 28일 스페인에서 발생한 대정전의 경우, 스페인-프랑스 간의 연계 선로에 나타난 주파수 진동을 줄이기 위해 발전력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전압 불안정 현상에 의한 것이라고 스페인 전력 당국은 발표했다. 즉, 밀집된 인버터에 의해서 나타나는 전력 진동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점을 1차적인 원인으로 지목할 수 있다.
인버터에 기인하는 전력 진동 현상은 인버터의 밀집도가 높아지고 AC 전원의 용량이 상대적으로 적어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따라서 에너지 전환이 본격화되면서 인버터 기반 설비가 집중적으로 확충되고, 기존의 AC 발전기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의 전력구조를 고려할 때, 이러한 진동 문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재생에너지의 분산화에 의한 인버터의 분산 배치, HVDC(고압 직류 송전)* 인버터의 수도권 집중화 회피, 동기조상기* 도입 등 AC 전력망의 안정성 확보를 위한 우리나라 전력 시스템의 구조 자체에 대한 설계가 중요하다.
*에너지 밀도: 국토 면적 1㎢당 1년간 사용하는 에너지량(또는 전력량)
*인버터 간섭 현상: 많은 인버터가 밀집되었을 때, 각 인버터가 계통에 주는 전기적 신호가 서로 충돌하거나 예상치 못한 진동을 유발하여 전력망의 전압과 주파수가 불안정해지는 현상
*HVDC(고압 직류 송전): 전력을 ‘직류(DC)’로 변환하여 손실 없이 먼 거리까지 전송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술.
*동기조상기: 기계적 부하가 없는 상태에서 운전하는 동기기로 전력계통의 무효전력을 흡수 또는 공급하여 전압을 안정시키는 장치. 현재 운영중인 발전소의 발전기를 동기조상기로 활용할 경우 계통에 관성제공이 가능해 급작스러운 주파수 하락 상황에서 최우선적으로 주파수 회복을 위한 역할이 가능함
다음은 주요 국가별 전기에너지 밀도를 비교한 표이다.


둘째, 우리나라의 전력수요의 45%, 발전기의 35% 정도가 수도권에 편중되어 있다. 수도권 소비자가 재생에너지를 쓰기 위해서는 수도권의 화석연료 발전기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해야 하는데, 부지가 제한적이라 수요를 충족하기 어려우므로 수도권 공장 수요의 지방 이전 등 전력수요를 분산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현재 수도권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송전 선로의 용량은 47GW 정도 되지만, 수도권 수요집중에 의한 전압안정도 문제로 실제 공급 한계는 12GW 수준으로 송전 선로 이용률이 25% 정도에 그치고 있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그림 1] 참조) 향후 계획된 송전망 대부분은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다. 그러나 현재 사용하는 345KV 철탑 1루트(2회선)의 용량이 4GW이고 송전선의 실제 이용률은 25%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도권 수요 10GW를 대체하기 위해서는 무려 345KV 송전탑 10개 루트를 건설해야 40GW 규모의 송전 용량을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현실적인 대안으로 현재 서해안의 당진, 보령, 태안의 석탄발전기가 생산하는 17GW의 전력을 재생에너지로 대체하고, 기존에 석탄발전기가 사용하던 송전선을 그대로 활용해서 재생에너지 전기를 수도권으로 수송하는 방안이 있다. 이처럼 기존 인프라를 활용함으로써 일정 규모의 수도권 수요를 추가 송전선 건설 없이 대체 가능하다.

다행히, 이번 정부에서는 재생에너지 발전 지역을 중심으로 RE100 산업단지를 개발하는 정책을 공약하고 있다. 따라서, 에너지 고속도로도 지역의 RE100 산단을 중심으로 지역 간 전력 융통을 위한 송전망을 반영하여 수정 계획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우리나라 원전은 출력조절이 어려운 경직성 전원(電源)*이라는 점이다. 현재 우리나라 회전기 발전기*는 3가지 방법으로 출력을 제어함으로써 발전기의 고장이나, 소비의 변화에 따른 주파수 안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⓵ 발전기 단의 조속기(Governor Free)에 의한 주파수 자동제어(초 단위 응동특성*)
⓶ 전력거래소 전력계통운영시스템(EMS)의 AGC(자동발전제어)에 의한 자동제어(분 단위 응동특성)
⓷ 발전기의 운영자에 의한 수동 출력 제어
그러나,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기는 위 ⓵번, ⓶번 기능은 없고 ⓷번 기능만 가지고 있다. 그리고, 출력조절 속도도 시간당 3%로 전체 출력의 20% 범위 안에서만 조정 가능하기 때문에 그 기능도 매우 제한적이다. 따라서 현재 재생에너지 10% 수준에서도 원자력 발전기와 재생에너지의 충돌 문제로 출력조절이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림 2]에서와 같이 2030년 재생에너지 비율이 30%인 경우만 가정하더라도, 재생에너지 출력이 80GW 정도까지 나오기 때문에 태양광이 강하고 전력 소모량이 적은 봄철 기간에는 현재 기준으로 원자력을 모두 정지하지 않으면 그만큼 재생에너지 출력을 인위적으로 제한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전원(電源): 전력계통에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발전소나 설비를 통틀어 이르는 말
*회전기 발전기: 코일이 회전하면서 전기를 만드는 발전기로, 주로 화력·수력처럼 터빈이 돌아가는 발전 방식에 쓰임
*응동특성: 주파수 변화나 수요 변화에 대한 발전기나 제어시스템의 반응 속도. ‘초 단위 응동특성’은 수 초 이내에 반응함을, ‘분 단위 응동특성’은 수 분 이내에 반응함을 의미함.

전력 시스템에서 원자력 발전기의 또 다른 문제는 낮은 수용성* 등을 이유로 한 부지에 집중적으로 건설되어 있다는 점이다. 즉, 원전이 집중건설 되어서 나타나는 안정도 문제(전원이 집중되어서 나타나는 문제를 과도안정도 문제라고 한다)를 해소하기 위해 송전선을 추가로 건설해야 하고, 이러한 구조는 송전선 전체의 효율적인 활용을 저해하여 송전선 이용률을 낮추는 결과를 낳는다. 특히, 지금 건설 중인 새울 3,4호기(신고리 5,6호기)는 현재의 송전선으로는 고시에서 정하는 안정성 기준을 만족시킬 수 없다. 따라서 새로운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논의하기 전에 현재의 원자력 발전기의 수용성, 경제성, 안정성을 먼저 논의해야 한다.
*수용성: 지역 주민이나 사회가 특정 시설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허용할 수 있는 정도
우리나라는 좁은 국토에 많은 원자력 발전소가 집중되어 있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원전 밀집도를 가지고 있다. 이처럼 발전소가 특정 지역에 몰려 있으면 과도안정도 문제*가 발생하고, 전력수요가 수도권이나 대도시에 집중되어 있어 전압안정도 문제*도 함께 나타난다. 그 결과 송전선은 일부 구간에 과부하가 걸리고, 전체적으로는 이용률이 낮아지는 구조가 형성된다. 즉, 우리나라 송전선은 발전과 수요가 밀집되어 있어서 이용률이 낮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과도안정도 문제: 발전소가 특정 지역에 집중되어 있을 때, 해당 지역에 사고 발생 시 전력망이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불안정해질 수 있는 구조적 위험
*전압안정도 문제: 전기를 멀리 보내거나 전력수요가 갑자기 많아졌을 때, 전압이 심하게 떨어지거나 올라가 전력계통이 불안정해지는 현상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재생에너지 설비나 인버터가 특정 지역에 집중되어 건설될 경우, 인버터 간섭으로 인한 전력동요 현상이 발생한다. 특히 앞으로 수도권에 건설될 재생에너지 인버터와 함께, 현재 집중적으로 계획되고 있는 HVDC(고압 직류 송전) 인버터는 이러한 불안정성을 심화시킬 수 있어 우려가 되는 상황이다.

전력 시스템은 탄소중립을 위한 에너지전환 과정에서도 항상 안정성을 유지해야 한다. 재생에너지를 주력 전원으로 안정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필요한 전원과 송전망을 건설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전력공급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서는 전원, 송전망, 부하(負荷)*의 입지 등을 모두 고려한 종합적인 계획 아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전력사정이 우리와 유사하면서도 재생에너지를 우리보다 앞서 대폭 확대한 영국의 전문가들이 우리에게 충고하고 있는 점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부하(負荷): 전기를 사용하는 모든 기기나 시설(예: 가정, 공장 건물 등)을 통틀어 칭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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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_기후위기 특집⑤] 탄소중립과 에너지전환 - 우리나라 전력 시스템 특성과 안정적 전력 시스템의 구조ㅣ전영환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