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윤(KAIST 미래전략대학원 교수)
뜨거운 열기는 차갑게 식기 마련일까. 예견되었음에도 왜 반복되는 걸까. 엔비디아를 중심으로 글로벌 증시를 주도하며 무섭게 오르던 AI 반도체 및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올해 하반기 들어서며 급등락과 함께 불안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에 앞서 미국 월가와 주요 경제/금융 언론들은AI 거품론을 본격적으로 이야기 하며 불확실성과 소외 가능성에 따른 맹목적인 투자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2-3년 전부터 신뢰성 있는 매체들과 전문가들이 제기해 온 ‘세 번째 인공지능 겨울’에 대한 우려는 어느새 실체를 가지며 가시권으로 들어오는 모습이다. 소외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FOMO, fear of missing out)과 함께 유행처럼 번지던 AI 도입과 투자 열기에 너도나도 올라탄 기업들과 정부들, 투자자들은 점차 냉정을 되찾으며 지속가능 하지 않은 실험과 투자를 조금씩 줄이고 있다. Covid-19 팬데믹으로 인해 풀었던 사상 최대의 유동성은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이를 잡기 위한 고금리 시대를 만들었고, 이로 인한 경기 사이클의 하강 전환이 현실화 될 경우 흡사 시베리아 한파처럼 인공지능 겨울을 더욱 차갑고 춥게 만들지도 모르겠다.
다가오는 인공지능 겨울은 얼마나 추울까? 기존 겨울들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왜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것이며,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본 글에서는 지난 인공지능 겨울들을 돌이켜 보고, 역사와 과학이 주는 교훈을 되새겨 보고자 한다.
인공지능 겨울의 역사
1954년, 기계 번역(machine translation) 실험이 처음 시도될 때만 하더라도 인공지능 연구는 미국 DARPA(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의 대규모 펀딩을 받으며 낙관적인 분위기 속에 있었다. 냉전시대로 접어들며 러시아어를 영어로 번역하는 일은 (‘스푸트니크 쇼크’로 대변되는 과학기술 경쟁 등) 그 중요성이 매우 크다는 점에서 뚜렷한 수요처도 있었다. 이후 ‘artificial intelligence’ 용어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1956년 Dartmouth Summer Project, 신경 과학(neuroscience) 분야에서 영감을 얻은 코넬대 Frank Rosenblatt의 1957년 ‘perceptron’ 머신 구현 등 역사적인 순간들과 함께 본격적으로 인공지능 분야가 태동되며 발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설립한 ALPAC(Automatic Language Processing Advisory Committee)에서 해당 분야 연구에 대한 그 간의 조사 결과를 담은 부정적인 보고서가 1966년 발표되며 미국 정부가 기계번역 분야 펀딩을 큰 폭으로 줄이게 되고, 이는 첫 번째 인공지능 겨울로 이어지는 계기가 된다. 이후 MIT의 Marvin Minsky와 Seymour Papert의 1968년 책 ‘Perceptrons’ 출판, 영국에서 인공지능 연구의 현황에 대한 분석을 담은 ‘Lighthill Report’의 발간 등으로 부정적인 평가와 전망과 함께 공공-민간 영역 모두에서 펀딩이 중단 되었고, 그 동안 힘겹게 이어져 오던 인공지능 연구는 크게 축소되거나 중단되었다.
이러한 인공지능 역사는 과거 여러 신기술들의 그것과 본질적으로 닮은 패턴을 보이며, 이는 기술적 가능성과 열망, 지나친 기대의 확산과 유행적 투자, 기대와 현실 간 괴리와 실망, 위험적 투자와 연구 펀딩의 축소, 그리고 악화된 환경에 따른 부정적 인식 확산으로 인한 악순환으로 이루어진다. 뜨거웠던 기대가 차갑게 식으면서 만들어진 부정적 인식과 현실 악화 간의 악순환은 꽤나 오랫동안 지속되며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첫 번째 인공지능 겨울을 거치면서 관련 학계와 업계의 많은 부서와 조직들이 문을 닫았고, 뛰어난 연구자들과 개발자들은 다른 일들을 찾아 나서야 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새로운 세대는 다른 분야로 눈을 돌렸다. 그렇게 우리는 한 세대, 혹은 몇 세대에 걸친 시간과 기회를 잃어 버리게 된다.
명맥을 유지하며 연구와 개발을 통해 느리지만 꾸준히 인공지능 관련 이론과 기술을 발전시켜 오던 이들은, 과거로부터 배우고 새로운 자본과 기회들을 활용하며, 전문가(의사결정 지원) 시스템 등 가능한 확실한 응용 분야에 초점을 맞추려 노력했다. 여러 산업 분야에 걸쳐 현장의 경험적 지식과 학계의 과학적 지식이 축적되고 활용되면서, 이를 알고리즘화 한 인공지능이 생산과 운영, 관리 등 고도로 전문적이고 실용적인 의사결정 업무에 접목되기 시작한 것이다. 1980-90년대로 들어서면서, 이처럼 인공지능은 연구용 이론과 개발의 단계에서 현실적 응용과 상업적 활용의 단계로 넘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흐름은IBM과 DEC 등 당대의 최고 빅테크들과 혁신적인 스타트업들이 참여하며 만들어 가고 있었고, 언론은 이들의 비전과 혁신 실험을 대중에게 전하며 인공지능에 대한 기대는 다시금 본격적으로 높아지게 되었다.
하지만 전문가 시스템의 한계가 드러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개발 단계에서 고려한 상황들의 범위를 넘어서는 예외 상황 속에서 그 기능과 성능이 기대 수준 이하로 떨어지곤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공지능의 신뢰성(reliability) 문제, 즉 편하게 믿고 쓰기 어려운 기술적 한계는 또 다른 이슈인 투명성(transparency) 문제, 즉 인공지능의 작동 원리(입력 데이터로부터의 결과 값이 어떻게 도출되는지)에 대한 이해와 설명이 어렵다는 한계와 맞물리며 본격적인 도입과 확산에 제동이 걸리게 된다. 아이러니 하게도 전문가 시스템의 이러한 한계들은 금융이나 의료와 같이 높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에서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능케 하는 과학적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시간은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결국 기대와 현실 간의 괴리는 다시금 세상의 기대를 차갑게 식히고 혁신적인 실험과 투자, 관련 조직은 크게 줄어들게 되었으며, 이로써 두 번째 인공지능 겨울로 접어들게 되었다. 기술적 미성숙함과 데이터의 부족 등 표면적인 이유들과 더불어, IT 버블이 꺼지며 투자 환경과 실물 경제가 하강 국면으로 접어들기 시작한 시대적인 상황도 두 번째 인공지능 겨울이 더욱 차갑고 오래 지속되는 데에 일조하게 된다.
최근 우리가 경험한 인공지능 봄은, 과거 두 번의 겨울을 거치며 척박해진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열정을 가지고 꾸준히 도전하며 명맥을 이어 온 관련 연구자들과 기업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2000년대 들어 컴퓨팅 및 인터넷 기술과 인프라의 발전 덕분에, 심층 신경망(deep neural network)과 같이 과거에 비해 더 복잡한 AI 모델을 월등히 많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시킬 수 있게 되면서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 방식과 속도는 이전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으로 도약하게 된다. 더불어, 과거와는 달리 이미지 인식(image recognition), 자연어 처리(natural language processing), 추천 시스템(recommendation systems), 데이터 분석(data analytics) 등 실용적, 상업적 가치가 분명한 기술들과 응용 분야들(검색과 추천, 자율주행과 헬쓰케어, 금융과 교육, 제조와 연구개발 등)을 중심으로 연구와 투자가 이루어졌고, 이러한 혁신 실험들에 영향을 받아 후속 투자와 참여가 이어지며 AI 생태계가 더욱 견고하고 풍성하게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역사로부터의 교훈, 그리고 필요한 일들
인공지능 겨울의 역사는 중요한 기술의 발전과 확산이 생각보다 오랜 기간에 걸쳐서 산발적이고 비선형적으로 이루어지며, 새로운 기술이 실제 가치를 만들며 제대로 활용되기 위해서는 기술 외적인 측면들이 중요함을 일깨워 준다. 역사로부터의 경험과 교훈, 나아가 이러한 경험적 지식이 체계화되고 검증되며 축적되어 온 과학적 지식에 귀를 기울일 때, 자연지능과 인공지능이 공존하며 상호보완적으로 만들어갈 새로운 세상을 보다 잘 준비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역사와 과학으로부터 얻은 몇 가지 교훈과 생각들을 정리하며 본 글을 매듭짓고자 한다.
첫째, 균형 있는 이해와 적절한 기대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술을 만들고 파는 이들이 기술적 가능성에 대해 예찬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가능성을 사회 곳곳에 전하며 관심과 기대를 촉발하는 일은 언론으로서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지나치게 높아진 기대가, 많은 사람들의 삶과 일자리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판단과 투자를 결정하는 이들의 눈과 귀를 흐려서는 안 될 것이다. 그 누구도 중요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기에, 이러한 의사결정권자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제대로 된 전문가들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며 함께 배우고 고민해 나갈 수 있는 체계와 제도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처럼 안정적인 사회조직적 기반 위에서 희망을 품은 조심스럽고 균형 잡힌 관점이 만들어지고 확산될 때, 암처럼 퍼지며 생태계를 망치는 잘못된 인식과 관점을 고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언론계의 책임감 있는 역할도 무척이나 중요하다.
둘째, 역사는 반복될 가능성이 높으며, 특히 과학적 이론이 된 과거 패턴은 더욱 그러하다. 예전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며 보다 많은 분야에 응용되고 있는 인공지능 기술이지만, 여전히 과거 인공지능 겨울들을 촉발했던 근본적인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그리고 기술적 가능성에 근거한 열망, 지나친 기대의 확산과 유행적 투자는 과거와 닮은 모습이며, 따라서 기대와 현실 간 괴리와 실망, 위험적 투자와 연구 펀딩의 축소, 그리고 악화된 환경에 따른 부정적 인식 확산으로 인한 악순환의 가능성은 여전히, 그리고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이제는 어떤 인식과 전략을 가지고 어떻게 준비해 가느냐에 따라서, 반복되는 역사의 희생양이 될 수도 있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내는 주인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셋째, 역사적 경험과 과학적 지식이 공통적이고 반복적으로 지목하는 두 가지 근본적인 문제는 신뢰성(reliability)과 비용효율성(cost efficiency)이다. 사회경제적으로 수용되고 확산되기 위해서는 믿고 의지하며 편안하게 쓸 수 있어야 하며, 이는 기술적 측면을 넘어 조직 환경과 인간 본성, 법/제도 등 여러 측면에서의 고민과 혁신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고차원적인 기술일 수록 복잡성이 높으며, 이는 현실 적용 단계에서 예기치 않은, 그리고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야기하게 된다. AI 모델 자체의 블랙박스(불투명성) 문제가 부각되고 있지만, AI 시스템이 현장에 수용되고 제대로 활용되기 위해 필요한 여러 조직/제도 변화들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생각할 때, 우리가 투명하게 들여다 보고 제대로 이해해야 할 시스템의 범위는 더욱 넓어져야 할 것이다. 분야와 경계를 넘는 교류와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이를 촉진하고 지원할 수 있는 체계와 제도를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투자가 선행되어야 한다.
비용효율성, 즉 ROI(return on investment) 문제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현재에도 점차 부각되고 있는 모습이다. 세상을 놀라게 하며 단기간에 많은 사용자들을 끌어들인 ChatGPT와 같은 생성형 AI 모델들은 기술적 성능 면에서는 진일보 했지만 ROI 문제는 더욱 해결이 어려울 수 있다.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과 두려움에 대규모 투자와 실험이 경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기업에게도 정부에게도 사회경제적 가치를 충분히 만들어내지 못하는 일에 많은 자원을 쏟아붓는 일은 지속가능 하지 않다. 그리고 엔비디아 현상으로 대변되는 산업 생태계 내 자원(관심과 투자)의 쏠림과 이로 인한 발전의 불균형은 인공지능이 산업 전반에 걸쳐 스며들며 우리의 삶을 크게 변화시키는 시점을 상당히 늦추게 될 것이다. 투자자들은 이러한 불확실성을 경계하기 시작했으며, 시장 자본주의 체제에서 경계를 넘는 금융 자산의 이동은 이러한 쏠림 현상을 기회로 인식하며 빠르게 이루어 질 수 있다. 금융 시장의 분위기와 방향 전환은 주요 언론의 보도와 기업 및 정부의 지배구조를 통해 심각하게 전해지며 주요 의사결정권자들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고, 이로 인해 관련 조직과 펀딩은 상당 부분 축소되거나 통폐합될 수 있다.
끝으로, 역사와 과학이 우리에게 주는 또 다른 큰 교훈은 ‘꾸준함’과 ‘전략’의 중요성이다. 인공지능 겨울의 한파 속에서도, 문을 닫고 많은 이들이 떠난 그 곳에서 묵묵히 신념을 가지고 연구와 투자를 지속하며 명맥을 이어온 연구자들과 기업가들, 지도자들이 있었기에 세상은 두 번째, 세 번째 인공지능 봄을 다시금 누릴 수 있었다. 이제는 개인적 노력과 희생을 넘어 꾸준한 투자와 연구, 실험이 이루어질 수 있는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체계와 시스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행정적인, 정치적인 이유로 분절되어 운영되는 정부 조직의 구조적 한계를 넘어, 이러한 전략적 노력과 협력이 가능할 수 있는 구조적 변화를 만들어 내는 일이 무엇보다 근본적이며 중요한 일일 것이다. 전략을 가질 수 있는 정부 조직 구조로 발전이 이루어져야, AI 규제를 넘어 도전과 혁신을 지원하는 데이터 거버넌스와 같은 인공지능 시대의 핵심적인 사회경제 인프라를 제대로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아울러 기업과 대학 또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주객이 전도되지 않도록 기술은 도구임을 상기하며, 여러 문제들 속에서 어떤 문제가 중요하고 왜 해결이 어려운지, 인공지능을 통해 기존 방식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등 전략적 사고와 문제 해결을 통해 기술의 활용 가치와 수용 가능성을 높여 나가야 할 것이다. 대학에서의 공학 교육은 정의된 문제 해결을 위한 기술 개발을 넘어, 사회경제적으로 중요하고 전략적 가치가 높은 문제를 볼 수 있는 안목과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과학기술-사회경제 분야의 경계를 넘어 교류하고 협력할 수 있는 인재들을 어떻게 양성할 수 있을지 고민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인공지능 겨울의 역사
1954년, 기계 번역(machine translation) 실험이 처음 시도될 때만 하더라도 인공지능 연구는 미국 DARPA(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의 대규모 펀딩을 받으며 낙관적인 분위기 속에 있었다. 냉전시대로 접어들며 러시아어를 영어로 번역하는 일은 (‘스푸트니크 쇼크’로 대변되는 과학기술 경쟁 등) 그 중요성이 매우 크다는 점에서 뚜렷한 수요처도 있었다. 이후 ‘artificial intelligence’ 용어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1956년 Dartmouth Summer Project, 신경 과학(neuroscience) 분야에서 영감을 얻은 코넬대 Frank Rosenblatt의 1957년 ‘perceptron’ 머신 구현 등 역사적인 순간들과 함께 본격적으로 인공지능 분야가 태동되며 발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설립한 ALPAC(Automatic Language Processing Advisory Committee)에서 해당 분야 연구에 대한 그 간의 조사 결과를 담은 부정적인 보고서가 1966년 발표되며 미국 정부가 기계번역 분야 펀딩을 큰 폭으로 줄이게 되고, 이는 첫 번째 인공지능 겨울로 이어지는 계기가 된다. 이후 MIT의 Marvin Minsky와 Seymour Papert의 1968년 책 ‘Perceptrons’ 출판, 영국에서 인공지능 연구의 현황에 대한 분석을 담은 ‘Lighthill Report’의 발간 등으로 부정적인 평가와 전망과 함께 공공-민간 영역 모두에서 펀딩이 중단 되었고, 그 동안 힘겹게 이어져 오던 인공지능 연구는 크게 축소되거나 중단되었다.
이러한 인공지능 역사는 과거 여러 신기술들의 그것과 본질적으로 닮은 패턴을 보이며, 이는 기술적 가능성과 열망, 지나친 기대의 확산과 유행적 투자, 기대와 현실 간 괴리와 실망, 위험적 투자와 연구 펀딩의 축소, 그리고 악화된 환경에 따른 부정적 인식 확산으로 인한 악순환으로 이루어진다. 뜨거웠던 기대가 차갑게 식으면서 만들어진 부정적 인식과 현실 악화 간의 악순환은 꽤나 오랫동안 지속되며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첫 번째 인공지능 겨울을 거치면서 관련 학계와 업계의 많은 부서와 조직들이 문을 닫았고, 뛰어난 연구자들과 개발자들은 다른 일들을 찾아 나서야 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새로운 세대는 다른 분야로 눈을 돌렸다. 그렇게 우리는 한 세대, 혹은 몇 세대에 걸친 시간과 기회를 잃어 버리게 된다.
명맥을 유지하며 연구와 개발을 통해 느리지만 꾸준히 인공지능 관련 이론과 기술을 발전시켜 오던 이들은, 과거로부터 배우고 새로운 자본과 기회들을 활용하며, 전문가(의사결정 지원) 시스템 등 가능한 확실한 응용 분야에 초점을 맞추려 노력했다. 여러 산업 분야에 걸쳐 현장의 경험적 지식과 학계의 과학적 지식이 축적되고 활용되면서, 이를 알고리즘화 한 인공지능이 생산과 운영, 관리 등 고도로 전문적이고 실용적인 의사결정 업무에 접목되기 시작한 것이다. 1980-90년대로 들어서면서, 이처럼 인공지능은 연구용 이론과 개발의 단계에서 현실적 응용과 상업적 활용의 단계로 넘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흐름은IBM과 DEC 등 당대의 최고 빅테크들과 혁신적인 스타트업들이 참여하며 만들어 가고 있었고, 언론은 이들의 비전과 혁신 실험을 대중에게 전하며 인공지능에 대한 기대는 다시금 본격적으로 높아지게 되었다.
하지만 전문가 시스템의 한계가 드러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개발 단계에서 고려한 상황들의 범위를 넘어서는 예외 상황 속에서 그 기능과 성능이 기대 수준 이하로 떨어지곤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공지능의 신뢰성(reliability) 문제, 즉 편하게 믿고 쓰기 어려운 기술적 한계는 또 다른 이슈인 투명성(transparency) 문제, 즉 인공지능의 작동 원리(입력 데이터로부터의 결과 값이 어떻게 도출되는지)에 대한 이해와 설명이 어렵다는 한계와 맞물리며 본격적인 도입과 확산에 제동이 걸리게 된다. 아이러니 하게도 전문가 시스템의 이러한 한계들은 금융이나 의료와 같이 높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에서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능케 하는 과학적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시간은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결국 기대와 현실 간의 괴리는 다시금 세상의 기대를 차갑게 식히고 혁신적인 실험과 투자, 관련 조직은 크게 줄어들게 되었으며, 이로써 두 번째 인공지능 겨울로 접어들게 되었다. 기술적 미성숙함과 데이터의 부족 등 표면적인 이유들과 더불어, IT 버블이 꺼지며 투자 환경과 실물 경제가 하강 국면으로 접어들기 시작한 시대적인 상황도 두 번째 인공지능 겨울이 더욱 차갑고 오래 지속되는 데에 일조하게 된다.
최근 우리가 경험한 인공지능 봄은, 과거 두 번의 겨울을 거치며 척박해진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열정을 가지고 꾸준히 도전하며 명맥을 이어 온 관련 연구자들과 기업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2000년대 들어 컴퓨팅 및 인터넷 기술과 인프라의 발전 덕분에, 심층 신경망(deep neural network)과 같이 과거에 비해 더 복잡한 AI 모델을 월등히 많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시킬 수 있게 되면서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 방식과 속도는 이전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으로 도약하게 된다. 더불어, 과거와는 달리 이미지 인식(image recognition), 자연어 처리(natural language processing), 추천 시스템(recommendation systems), 데이터 분석(data analytics) 등 실용적, 상업적 가치가 분명한 기술들과 응용 분야들(검색과 추천, 자율주행과 헬쓰케어, 금융과 교육, 제조와 연구개발 등)을 중심으로 연구와 투자가 이루어졌고, 이러한 혁신 실험들에 영향을 받아 후속 투자와 참여가 이어지며 AI 생태계가 더욱 견고하고 풍성하게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역사로부터의 교훈, 그리고 필요한 일들
인공지능 겨울의 역사는 중요한 기술의 발전과 확산이 생각보다 오랜 기간에 걸쳐서 산발적이고 비선형적으로 이루어지며, 새로운 기술이 실제 가치를 만들며 제대로 활용되기 위해서는 기술 외적인 측면들이 중요함을 일깨워 준다. 역사로부터의 경험과 교훈, 나아가 이러한 경험적 지식이 체계화되고 검증되며 축적되어 온 과학적 지식에 귀를 기울일 때, 자연지능과 인공지능이 공존하며 상호보완적으로 만들어갈 새로운 세상을 보다 잘 준비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역사와 과학으로부터 얻은 몇 가지 교훈과 생각들을 정리하며 본 글을 매듭짓고자 한다.
첫째, 균형 있는 이해와 적절한 기대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술을 만들고 파는 이들이 기술적 가능성에 대해 예찬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가능성을 사회 곳곳에 전하며 관심과 기대를 촉발하는 일은 언론으로서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지나치게 높아진 기대가, 많은 사람들의 삶과 일자리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판단과 투자를 결정하는 이들의 눈과 귀를 흐려서는 안 될 것이다. 그 누구도 중요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기에, 이러한 의사결정권자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제대로 된 전문가들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며 함께 배우고 고민해 나갈 수 있는 체계와 제도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처럼 안정적인 사회조직적 기반 위에서 희망을 품은 조심스럽고 균형 잡힌 관점이 만들어지고 확산될 때, 암처럼 퍼지며 생태계를 망치는 잘못된 인식과 관점을 고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언론계의 책임감 있는 역할도 무척이나 중요하다.
둘째, 역사는 반복될 가능성이 높으며, 특히 과학적 이론이 된 과거 패턴은 더욱 그러하다. 예전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며 보다 많은 분야에 응용되고 있는 인공지능 기술이지만, 여전히 과거 인공지능 겨울들을 촉발했던 근본적인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그리고 기술적 가능성에 근거한 열망, 지나친 기대의 확산과 유행적 투자는 과거와 닮은 모습이며, 따라서 기대와 현실 간 괴리와 실망, 위험적 투자와 연구 펀딩의 축소, 그리고 악화된 환경에 따른 부정적 인식 확산으로 인한 악순환의 가능성은 여전히, 그리고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이제는 어떤 인식과 전략을 가지고 어떻게 준비해 가느냐에 따라서, 반복되는 역사의 희생양이 될 수도 있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내는 주인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셋째, 역사적 경험과 과학적 지식이 공통적이고 반복적으로 지목하는 두 가지 근본적인 문제는 신뢰성(reliability)과 비용효율성(cost efficiency)이다. 사회경제적으로 수용되고 확산되기 위해서는 믿고 의지하며 편안하게 쓸 수 있어야 하며, 이는 기술적 측면을 넘어 조직 환경과 인간 본성, 법/제도 등 여러 측면에서의 고민과 혁신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고차원적인 기술일 수록 복잡성이 높으며, 이는 현실 적용 단계에서 예기치 않은, 그리고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야기하게 된다. AI 모델 자체의 블랙박스(불투명성) 문제가 부각되고 있지만, AI 시스템이 현장에 수용되고 제대로 활용되기 위해 필요한 여러 조직/제도 변화들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생각할 때, 우리가 투명하게 들여다 보고 제대로 이해해야 할 시스템의 범위는 더욱 넓어져야 할 것이다. 분야와 경계를 넘는 교류와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이를 촉진하고 지원할 수 있는 체계와 제도를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투자가 선행되어야 한다.
비용효율성, 즉 ROI(return on investment) 문제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현재에도 점차 부각되고 있는 모습이다. 세상을 놀라게 하며 단기간에 많은 사용자들을 끌어들인 ChatGPT와 같은 생성형 AI 모델들은 기술적 성능 면에서는 진일보 했지만 ROI 문제는 더욱 해결이 어려울 수 있다.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과 두려움에 대규모 투자와 실험이 경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기업에게도 정부에게도 사회경제적 가치를 충분히 만들어내지 못하는 일에 많은 자원을 쏟아붓는 일은 지속가능 하지 않다. 그리고 엔비디아 현상으로 대변되는 산업 생태계 내 자원(관심과 투자)의 쏠림과 이로 인한 발전의 불균형은 인공지능이 산업 전반에 걸쳐 스며들며 우리의 삶을 크게 변화시키는 시점을 상당히 늦추게 될 것이다. 투자자들은 이러한 불확실성을 경계하기 시작했으며, 시장 자본주의 체제에서 경계를 넘는 금융 자산의 이동은 이러한 쏠림 현상을 기회로 인식하며 빠르게 이루어 질 수 있다. 금융 시장의 분위기와 방향 전환은 주요 언론의 보도와 기업 및 정부의 지배구조를 통해 심각하게 전해지며 주요 의사결정권자들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고, 이로 인해 관련 조직과 펀딩은 상당 부분 축소되거나 통폐합될 수 있다.
끝으로, 역사와 과학이 우리에게 주는 또 다른 큰 교훈은 ‘꾸준함’과 ‘전략’의 중요성이다. 인공지능 겨울의 한파 속에서도, 문을 닫고 많은 이들이 떠난 그 곳에서 묵묵히 신념을 가지고 연구와 투자를 지속하며 명맥을 이어온 연구자들과 기업가들, 지도자들이 있었기에 세상은 두 번째, 세 번째 인공지능 봄을 다시금 누릴 수 있었다. 이제는 개인적 노력과 희생을 넘어 꾸준한 투자와 연구, 실험이 이루어질 수 있는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체계와 시스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행정적인, 정치적인 이유로 분절되어 운영되는 정부 조직의 구조적 한계를 넘어, 이러한 전략적 노력과 협력이 가능할 수 있는 구조적 변화를 만들어 내는 일이 무엇보다 근본적이며 중요한 일일 것이다. 전략을 가질 수 있는 정부 조직 구조로 발전이 이루어져야, AI 규제를 넘어 도전과 혁신을 지원하는 데이터 거버넌스와 같은 인공지능 시대의 핵심적인 사회경제 인프라를 제대로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아울러 기업과 대학 또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주객이 전도되지 않도록 기술은 도구임을 상기하며, 여러 문제들 속에서 어떤 문제가 중요하고 왜 해결이 어려운지, 인공지능을 통해 기존 방식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등 전략적 사고와 문제 해결을 통해 기술의 활용 가치와 수용 가능성을 높여 나가야 할 것이다. 대학에서의 공학 교육은 정의된 문제 해결을 위한 기술 개발을 넘어, 사회경제적으로 중요하고 전략적 가치가 높은 문제를 볼 수 있는 안목과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과학기술-사회경제 분야의 경계를 넘어 교류하고 협력할 수 있는 인재들을 어떻게 양성할 수 있을지 고민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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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인공지능 겨울, 역사의 교훈과 우리의 전략 | 이상윤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