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
1. 빛나는 나라, 그러나 중병에 걸린 위기의 대한민국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압축 성장을 이뤘다. 한국전쟁 직후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가 불과 반세기 만에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 됐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달성했고, 정보통신·문화·스포츠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가 주목하는 성취를 이루었다.
그러나 빛나는 표면 아래 어두운 위기가 드리워져 있고,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있다. OECD 국가 중 국민 행복도는 최하위권이고, 합계출산율은 0.7명(2024년 기준)으로 세계 최저다. 전체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는데도 수도권 인구는 계
속 늘고 있다. 수도권에 사람과 활력을 빼앗긴 비수도권 지역은 저절로 쇠퇴하는 게 아니라 쇠퇴를 강요당하고 있다. 가난한 나라에서 부자 나라가 되었는데도 왜 국민은 행복하지 않을까? 어찌하여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인구 제로’에 도달할 나라로 주목받게 되었을까?
대한민국이 매우 아픈 나라라는 사실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강남의 산후조리원 중에는 2주 숙박비용이 수천만 원에 이르는 곳도 있으며, 여기서 신생아 의대 보내기 커뮤니티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경쟁해서 이겨야 한다는 무한경쟁이 당연한 듯 지속되는 선진국은 우리밖에 없다.
특히 교육과 부동산은 국민을 옥죄는 족쇄가 됐다. 학창 시절은 전쟁터 같고, 대학입시는 인생의 성패를 가르는 절벽이다. 세상 어디에나 고가 주택 지역은 있지만, 평생 월급을 모아도 집을 살 수 없을 만큼 가격이 치솟아 서민들이 고통받는 나라는 많지 않다. 경쟁교육과 부동산의 이중고는 연애·결혼·출산을 짓누르는 바윗돌이다. 여기에 수도권 쏠림이 겹치며 인구위기와 지역위기의 악순환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 고리를 끊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2. 문제의 근원과 표류해온 ‘균형발전정책’
사람이나 도시나 병을 고치려면 근본 원인을 알아야 한다. 국토의 병, 국가의 병도 마찬가지다. 문제의 근본 원인을 파악하고, 대증요법 사용이 아닌 근원 치료를 해야 고칠 수 있다.
우리나라 수도권 면적은 전국의 11.8%에 불과하다. 1975년 당시 수도권에는 전체 인구의 31.5%가 살았다. 수도권 인구는 점점 늘어 2019년을 지나면서 50%를 넘겼고 이후에도 계속 늘어 2024년 50.8%를 기록했다. 수도권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데에는 수도권 신도시 건설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

한국토지주택연구원의 <1·2기 신도시 종합평가 연구(2021)>에 따르면 1, 2기 신도시 총 90만 7천 호의 주택이 수도권에 공급되어 서울의 과밀인구가 수도권으로 분산되는 효과는 거두었지만, 비수도권 인구를 수도권으로 빨아들이는 부작용도 가져왔다. 1980년에서 1990년까지 증가했던 비수도권 인구는 1기 신도시 입주가 진행되었던 1990~1995년에 41만 명 감소했고, 2기 신도시 입주 시기였던 2000~2005년에도 27만 명 감소했다. 입주를 앞두고 있는 18.6만 호 규모의 수도권 3기 신도시 역시 비수도권 인구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 역대 정부는 줄곧 ‘균형발전’을 강조해왔다. 헌법 제123조 2항은 국가가 지역 간 균형발전을 위해 노력할 의무를, 제122조는 국토를 효율적·균형적으로 이용·보전할 수 있는 권한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정책은 시대마다 표류했다.
권위주의 정권의 개발시대에는 ‘균형’보다 ‘발전’이 중시되었다. 대도시와 대기업, 경부축에 집중한 ‘성장거점(growth pole)’ 전략은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 이론에 기대었지만 현실에서는 작동하지 않았다. 단기간에 총량적 경제발전은 이루었지만 수도권과 비수도권, 경부축과 비경부축, 대도시와 중소도시, 도시와 농산어촌의 격차는 커졌다. 민주화 이후 김영삼 정부는 공장총량제와 과밀부담금을, 김대중 정부는 지역산업 육성을 추진했지만, 외환위기라는 국가적 위기 속에 충분히 실현되지 못했다.
균형발전이 국정 최우선 과제가 된 것은 노무현 정부 시절이다. 수도 이전 공약은 위헌 결정으로 무산되었지만 세종시 건설로 이어졌다. 또 다른 대표 정책은 공공기관 지방이전이었다. 이로써 전국 10개 시·도에 혁신도시가 조성되고, 153개 공공기관이 이전했다. 그러나 지방 중소도시 외곽에 신도시를 새로 만든 방식은 심각한 오류였다. 기존 도시 같으면 가족들과 함께 내려올 수 있겠지만 공공기관만 덩그러니 들어선 신도시에 가족들을 데려 올 수 없었을 것이다. 혁신도시, 기업도시, 도청 이전 신도시까지 20여개 신도시를 짓기 위해 동시에 풀린 토지 보상가의 상당 부분은 서울 강남 아파트 구입에 쓰였을 것이다. 공공기관 이전을 명분으로 신도시를 건설함으로써 원도심을 살릴 기회를 놓쳤고, 결과적으로 혁신도시는 빛났지만 주변 도시와 농산어촌은 더 어려워졌다.

국토연구원(2018)은 혁신도시 건설 후 인근 원도심에서 6.9만 명이 빠져나가 혁신도시로 이동했다고 분석한다. 비수도권을 살리려던 정책이 오히려 비수도권의 기존 도시를 약화시킨 셈이다.
인구 감소 시대에 건설하는 신도시는 주변 인구를 흡수하는 블랙홀과 같다. 오래된 도시는 스스로 쇠락한 것이 아니라 새 도시에 인구를 빼앗긴 것이다. 균형발전정책은 수십 년을 표류해왔고, 지금도 수도권 집값 안정을 명분으로 신도시 건설과 대규모 주택공급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는 곧 비수도권 쇠퇴 심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이다. 이 고리를 끊지 않으면 안 된다.
3. 치유의 시작 – ‘일백탈수’
문제의 원인을 알았으니 이제는 치유해야 한다. 우선 관점부터 바꿔야 한다. 지방의 ‘인구’를 유지하거나 늘리겠다는 관점에서 벗어나 ‘인재’ 중심으로 바라봐야 한다. 인구는 줄 수밖에 없다. 인구에 집착하지 말고 이미 지역에 있는 인재를 존중하며, 외부 인재가 올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집토끼가 행복해야 그것을 보고 산토끼가 온다는 것을 명심하고 외부 인재 초대에 앞서 지역 내 인재 예우부터 성심껏 해야 한다.
또 하나의 전환은 ‘개별’에서 ‘연결’로의 변화다. 수도권에 에너지를 빼앗긴 지방의 이웃한 소도시들이 각자도생하며 벌이는 제로섬 경쟁을 멈추고, 서로 연결·연대·연합해야 한다. 행정 통합을 전제로 한 ‘메가시티’ 구상보다는 다양한 형태의 ‘도시연합’이 더 효과적이다. 소도시연합, 중소도시연합, 대도시와 중소도시 연합 등 다양한 모델이 가능하다. 도시연합의 출발점은 ‘대중교통’ 연결이다. 편리한 교통망이 갖춰지면 행정구역은 달라도 생활권과 경제권을 공유하며 상생할 수 있다. 이는 막대한 비용과 부작용이 예상되는 메가시티보다 훨씬 저비용·고효율의 해법이다.
대한민국이 아픈 이유는 인구 ‘감소’ 자체보다 ‘쏠림’ 때문이다. 전체 인구는 줄어드는 반면, 수도권만 인구가 늘어나면서 도시 문제는 심화되고, 비수도권은 인구를 빼앗겨 소멸 위기에 몰려 있다. 이를 해결하는 핵심은 수도권 인구를 비수도권으로 분산하는 것이다. 사람을 필요로 하는 비수도권으로, 중소도시와 원도심으로, 농산어촌으로 인재가 자발적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서울과 수도권으로 향하던 인구의 흐름을 반대로 돌리는 것이 ‘일백탈수 지역민국(一百脫首 地域民國)’이다. ‘일 년에 백만 명씩 수도권을 떠난’ 인구가 흩어지지 않고 ‘같은 꿈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지역민국’을 만드는 것이다. 10년간 1천만 명이 수도권에서 비수도권으로 옮겨간다면 인구위기와 지역위기를 함께 치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그 조짐은 나타나고 있다. 청년들이 수도권을 떠나 지역에서 창업하고, 베이비붐 세대가 귀향하거나 로컬에서 새로운 삶을 찾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 학부모들은 자녀를 더 건강하게 키우려는 ‘로컬유학’을 모색하고 있다. 주민등록을 옮기지 않더라도 업무·학업·여행으로 지역과 관계 맺는 ‘관계인구’와 ‘생활인구’도 빠르게 늘고 있다. 이들을 따뜻하게 환대한다면 머지않아 적극적 활동인구, 나아가 상주인구로 자리잡을 수 있다.
또한 5도2촌, 4도3촌* 같은 생활양식, 원격근무와 워케이션** 확산도 인구 분산을 촉진하는 긍정적 흐름이다. 이러한 다양한 경로를 모아내는 것이 바로 ‘일백탈수’의 시작이다.
*5도2촌, 4도3촌: 일주일 중 5/4일은 도시에서 일하고, 2/3일은 농촌에서 보내는 생활 방식
**워케이션(workation): 일(work)과 방학(vacation)의 합성어로, 휴가지에서 일과 휴식을 동시에 즐기는 새로운 근무 형태

4. 치유의 완결 – ‘지역민국’
‘일백탈수’로 시작된 대한민국 치유의 여정은 ‘지역민국’에서 완성될 것이다.
2021년 하동에서 한 달 살이를 하며 이런 생각을 했다. “지리산과 섬진강, 남해바다를 모두 품은 이 땅은 얼마나 풍요로운가. 여기서 나고 자란 사람들, 이곳을 좋아해 찾아온 이주민들 모두 훌륭하지 않은가. 특정 정당이 아니라 주민이 원하는 인물을 스스로 선택하는, 진짜 주인이 주민인 나라—‘하동민국’을 만들 수는 없을까?”
그해 겨울 전북 진안에서 들은 이야기도 인상 깊었다. 전통적으로 특정 정당이 독점하던 지역에서 단일화 후보가 선전해 근소한 차이로 낙선했다는 것이다. 인구 2만4천 명 남짓한 진안에도 귀농·귀촌 인구가 꾸준히 늘고 있었다. 만약 이곳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5천명, 1만명 넘게 이주해 와서 과반을 넘는 유권자가 된다면, ‘진안민국’은 더 이상 꿈이 아닐 것이다.
지역민국은 기초자치단체 단위에서도 가능하고, 광역 차원에서도 구상할 수 있다. 필자의 고향 전주에서 느낀 아쉬움은 전북 14개 시군이 서로 경쟁하며 대중교통조차 제대로 연결하지 않는 현실이었다. 상대적으로 약한 전라북도가 힘을 모아도 부족한데, 인구 유출을 우려해 단절을 선택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나는 ‘전북민국’을 꿈꾼다. 14개 시군이 하나의 도시처럼 뭉쳐 상생한다면 가능하다. 그 출발은 ‘전북 BRT(간선급행버스체계)’다. 시군을 동서남북으로 촘촘히 잇는 간선급행버스가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오간다면, 전북은 하나의 생활권·경제권이 될 것이다. “나는 전주시민, 당신은 진안군민”이 아니라 “우리는 모두 전북시민”이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전북은 대한민국의 축소판이다. 진안의 고원, 김제의 평야, 부안·고창의 갯벌, 순창의 발효 문화, 전주·군산·익산 같은 매력적인 도시들까지 갖추고 있다. 2024년 전북특별자치도로 새롭게 출발한 전북이 진정한 ‘전북민국’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전북 BRT’가 가동된다면 수도권을 떠나려는 이들을 전북으로 초대할 명분이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전북으로 오세요. 14개 시군 어디를 택해도 나머지 열세 곳을 함께 누릴 수 있습니다. 전북은 하나입니다.”
“일백탈수로 지역민국을!” 일 년에 백만 명씩 수도권을 떠나, 하동에서 진안에서 전북에서 경북에서 새로운 ‘지역민국’을 만들자. 건강한 국토, 행복한 국민, 지속 가능한 나라 대한민국은 ‘일백탈수 지역민국’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5. 국가가 할 일
서울과 수도권으로 인구가 몰리면서 수도권은 극심한 경쟁에 시달리고 출생률은 추락했다. 반대로 사람과 에너지를 빼앗긴 비수도권은 쇠퇴를 강요당하고 있다.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 국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수도권으로 인구를 빨아들이는 ‘진공청소기’를 멈추게 하는 것이다. 수도권 신도시 건설, 대규모 택지개발과 아파트 공급은 중단해야 한다. 기후 위기 시대에 걸맞지 않고 막대한 건설비용이 들어가는 GTX, 철도·고속도로 지하화, 대심도 지하도로 건설 등 각종 지하화 사업도 더 이상 추진해서는 안 된다. 인구위기, 기후위기, 지방위기 시대의 국가 재정은 ‘수도권 흡입형 개발사업’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균형발전’에 쓰여야 한다.
이제 재정 투자의 중심을 비수도권으로 돌려야 한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대중교통 혁신’이다. 수도권은 지하철·버스로 어디든 갈 수 있지만, 비수도권은 자가용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하다. 배차 간격이 길고 불편한 버스, 드문 시외버스·고속버스 노선은 주민을 고립시킨다.
지하철처럼 건설비용이 막대한 교통수단은 답이 아니다. 비용 대비 효율성이 높은 BRT가 해법이다. 전국 고속철도 정차역에서 내리면 역 앞에서 바로 BRT로 환승해 최단경로로 인근 도시까지 자가용보다 빠르게 갈 수 있도록 한다면, 고속철도역 주변 도시들은 하나의 생활권·경제권으로 묶일 수 있다.
폐선 위기에 놓인 기존 철도도 적극 활용해야 한다. 광주선 셔틀열차는 불과 15분 만에 광주의 동서를 잇던 가장 빠른 이동 수단이었지만 적자를 이유로 운행이 중단되었다. 새로운 철도를 건설하는 데 막대한 비용을 들이기보다, 이미 보유한 철도 자산을 되살려 지역 곳곳의 혈맥을 이어야 한다. 수익에 민감한 코레일에만 맡길 일이 아니다. 국가가 나설 일이다. 대중교통 연결은 비수도권의 활력을 키우는 국가적 최우선 과제다.
지방정부 주도의 버스 완전공영제와 무료버스에도 국가가 적극 지원해야 한다. 시군 내부의 무료버스가 인접 지역끼리 서로 연결된다면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독일의 9유로(현 49유로) 정기권처럼 일정 금액으로 한 달 동안 국내 대중교통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 정기권(가칭 K-Pass+) 제도 도입도 검토하기 바란다. 고령화 시대의 모빌리티 혁신과 복지까지 감안한다면 ‘대중교통 무료화’ 정책 역시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끝으로, 국가 인구정책은 ‘출산 장려’ 중심에서 ‘인구 재배치’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 수도권으로 몰려오던 인구가 비수도권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장려하는 것, 그것이 국가가 나서서 해야 할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출산율 제고만으로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인구 재배치를 통해 국토 전체가 살아나야 한다.

6. 지방정부가 할 일 – 5대 영양소로 인재 예우 및 초대
로컬로 인재를 초대하려면, 인재들이 와서 불편 없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부터 마련해야 한다. 지방정부가 준비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는 ‘일자리’, ‘살자리’, ‘교통망’, ‘관계망’, ‘돌봄행정’이다. 이를 ‘행복한 로컬을 만드는 5대 영양소’라 부를 수 있다.
첫째, 일자리다. 과거처럼 대기업 유치나 공장 신설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지역의 고유성(locality)을 살린 창의적이고 지속가능한 일자리가 필요하다. 취업 일변도의 사고에서 벗어나 창업·프리랜서·워케이션 등 다양한 형태의 일과 삶을 지원해야 한다. 수도권 기업의 위성사무실을 로컬로 유치하는 것도 방법이다.
둘째, 살자리다. 빈집은 많지만 실제로 살 수 있는 집은 부족하다. 청년과 중장년이 장기 거주하거나 일정 기간 머무를 수 있도록 주택과 스테이를 함께 제공해야 한다. 제주 ‘다자요’처럼 장기 무상임대 후 활용하거나, 전남 강진군처럼 빈집을 마을호텔로 되살리는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지방정부가 이런 방식으로 살자리를 확보한다면 많은 이들이 기꺼이 초대에 응할 것이다.

셋째, 교통망이다. 비수도권의 가장 큰 약점은 불편한 대중교통이다. 자가용이 탁한 피가 흐르는 막힌 혈관이라면, 대중교통은 맑은 혈류다. 전북 14개 시군을 연결하는 ‘전북 BRT’ 구상과 지리산권 남원·구례·하동·산청·함양을 연결하는 ‘지리산 BRT’ 구상이 실현된다면 지역을 촘촘히 이어 생활권을 넓히는 좋은 모델이 될 것이다. 자가용보다 빠르고 비용이 적게 드는 교통망이 갖춰진다면 로컬은 다시 살아날 수 있다. 대중교통·자전거·보행으로 생활과 관광을 할 수 있는 ‘대자보 도시’를 지향해야 한다.
넷째, 관계망이다. 인재들이 지역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하려면 사람 간 연결망이 필요하다. ‘전라북도 청년모정’을 비롯해 문경, 상주, 의성 청년들의 ‘K-Local 100’ 같은 청년 네트워크가 대표적이다. 여기에 로컬로 내려온 중장년이 청년들의 ‘비빌 언덕’이 되어 준다면 로컬의 관계망은 더욱 단단해진다.
다섯째, 돌봄행정이다. 개발 시대의 공급자 중심 행정에서 벗어나, 생애주기 전반을 세심하게 돌보는 수요자 맞춤형 행정으로 혁신해야 한다. 일본 시마네현 오난정은 출산·육아 지원에 시정의 초점을 맞추고 수요자 맞춤형 원스톱 돌봄행정으로 전환하여 지속적인 출산율 증가라는 성과를 거두었다. 우리도 충분히 가능하다.
이 다섯 가지는 떨어져 존재하지 않는다. 일자리가 있어도 살자리가 없으면 소용없고, 교통망이 약하면 관계망도 약해지며, 돌봄이 없으면 정착이 어렵다. 지방정부는 이 5대 영양소를 패키지로 갖추고, 인재를 예우하며 초대해야 한다. 그것이 지역의 생존을 지키는 길이다.

7. 국민이 할 일 – 로컬과 관계 맺기
국가와 지방정부만으로는 대한민국의 치유가 완성되지 않는다. 마지막 단추는 국민이 꿰야 한다. 일백탈수와 지역민국의 성패는 국민 개개인의 선택과 작은 실천에 달려 있다. 지금 사는 곳에서 100% 행복하지 않다면 대한민국의 다양한 로컬과 관계를 맺으며 ‘관계인구’, ‘생활인구’로 살아보길 권한다. 지금보다 더 행복한 삶의 대안을 로컬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관계 맺기는 어렵지 않다.
(1) 살아보기: 5도2촌, 4도3촌, 한 달 살기, 반년 살기 같은 생활형 체류부터 시작할 수 있다. 단순한 여행자가 아니라 생활자로서 지역과 만나야 한다.
(2) 소비: 식탁에 로컬 농산물을 올리고, 지역 가게·카페·시장을 찾자. 가능하다면 지역은행 계좌를 만들고, 소액이라도 지역 협동조합이나 로컬 펀드에 출자해보자. 돈의 흐름이 바뀌면 일자리와 공동체도 달라진다.
(3) 이동: 자가용 대신 기차, 버스, 자전거, 보행으로 지역을 경험하자. ‘대자보 도시’(대중교통·자전거·보행) 감각으로 이동하면 관계의 깊이가 달라진다.
(4) 관계망: 청년들은 네트워크로, 중장년은 ‘비빌언덕’으로 참여해야 한다. 자녀의 로컬유학을 통해 가족이 함께 지역에 스며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5) 일하는 방식: 원격근무·워케이션·위성사무소 활용으로 일정 기간 지역에서 일해보자. 작게 시작해 오래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국민의 발걸음, 지갑, 시간, 관심이 모이면 ‘일백탈수’는 계획이 아니라 현실이 된다. 떠나되 흩어지지 않는 나라, ‘지역민국’은 결국 국민의 손끝에서 완성된다.
코로나 팬데믹을 계기로 펴낸 <도시의 생존> 책에서 저자인 하버드대 경제학과 에드워드 글레이저와 데이비드 커틀러 교수가 던진 질문은 “도시는 위기 속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가?”였다. 그들의 답은 낙관적이다. 도시의 역사는 늘 위기였지만, 위기가 닥칠 때마다 본래 이기적이던 인간이 공동체의 생존을 위해 이타심을 발휘한 덕분에 도시가 생존해 왔다는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은 선진국이 되었지만 국민은 여전히 행복하지 않다. 가난했던 시절에도 우리에겐 어려운 이웃을 품었던 ‘이타심’이 있었지만, 지금은 무한경쟁이 그것을 덮어버렸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타적 이기주의’다. 위기에 빠진 공동체가 생존하려면 이타심을 앞세워야 한다. “부자 되세요!”라는 말을 당연하듯 주고받던 시절부터 대한민국의 병은 깊어졌다. 상식을 회복하자. 어디서나 누구나 함께 행복한, 진짜 선진국 대한민국의 치유와 회복의 여정은 본래 따뜻했던 우리 국민의 ‘마음’에서 시작될 것이다.

관련 자료
1. 정석(2024), 행복@로컬, 레벤북스
2. 한국토지주택연구원(2021), 1·2기 신도시 종합평가 연구
3. 윤영모(2018), 혁신도시와 주변지역의 인구이동 특성과 대응 과제, 국토정책브리프
2. 한국토지주택연구원(2021), 1·2기 신도시 종합평가 연구
3. 윤영모(2018), 혁신도시와 주변지역의 인구이동 특성과 대응 과제, 국토정책브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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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_인구위기 특집②] 대한민국 치유의 길 – ‘일백탈수 지역민국(一百脫首 地域民國)’ㅣ정석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