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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_인구위기 특집①] 인구소멸과 공동체 위기 - 생활 자치가 소횐되는 이유

박경숙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자치自治’ 소환의 시대적 배경
삶의 방식이란 어떻게 살아가는가의 문제다. 즉, 의식주 생활, 사람들과 맺는 관계, 자신과 사회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저마다 살아가는 방식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스스로 만드는 것일 수 있다. 먹는 것, 입는 것, 어느 동네에 사는 것, 돈을 버는 것, 일을 하는 것, 가족을 형성하는 것, 학교에 가는 것, 게임을 하는 것, SNS를 하는 것 등 우리 일상의 삶은 이미 만들어진 관계와 환경 속에서 스스로 영위하는 것이다. 때문에, 삶의 전환을 위해서는 관계와 스스로의 살아가는 방식을 함께 바꿔야 한다.

자치*가 소환되고 있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자신을 중요하게 여기는 시대임에도, 자유와 행복을 저해하는 관계 다발의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 스스로 살아갈 책임과 가치가 중요해지는데, 그럴수록 공동체적 연대와 사회적 자원이 약화되기 쉽고, 사회적 관계와 환경에 대응하는 힘은 약해진다. 자유와 소외라는 양면의 얼굴을 한 시장체계가 생활을 지배하고 있다. 자기 계발을 향해 선택하는 환경은 점점 돌봄에서 멀어지고 있다. 자연, 이웃, 동료, 친구, 믿을 수 있는 어른들이 사라지고 있다. 마음을 드러낼 수 있는 인간관계는 사라지고, 반려동물, 챗, 로봇이 정서적 소통을 대신하고 있다. 고도로 분화된 생산시스템에 맞추어진 몸은 행복하지 않고, 우열로 비교되는 삶은 자율성을 잃어버리고 있다. 시장 속에서 스스로 삶의 조건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소수이고, 많은 사람들은 생존을 대가로 자치를 잃어버리고 산다.

*자치: 스스로 자신의 삶, 더불어 사는 생활공동체를 다스리는 것


국가복지가 답이라고 여겼다. 성장을 위해 복지를 희생하지 않고, 선진국처럼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국가가 공공 서비스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인식하였다. IMF 이후, 국가복지제도가 확장되고, 저출산·고령화 조건에서 영유아 보육제도, 장기요양보험제도가 확대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노인 자살율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병원, 요양원이 아닌 자신이 살던 곳에서 이웃과 소통하면서 마지막까지 살아가는 모습을 기대하기 어렵다. 돌봄노동자의 인권도 취약하고, 돌봄노동의 가치는 폄하되고 있다. 돌봄의 환경이 약화되면서, 남은 선택지는 천천히 늙어가는 것이 되었다.

 

 

복지 제도의 한계와 모순
우리는 국민이 되어 광장에 모여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힘을 갖지만, 정작 일상을 지킬 힘은 약하다. 공무원을 찾아가 하소연해도 바뀌는 게 없다. 공무원은 민원을 받아내는 감정노동까지 해야 하는 데에 지친다. 찾아가는 복지 서비스는 존재하지만, 혼자 외롭게 죽어가는 사람들을 사전에 발견하지 못한다. 지역사회복지, 돌봄통합체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과연 실현될 수 있는가 갑갑한 상황이다. 서비스 이해 당사자들은 협력하지 않고, 믿을 수 있는 이웃은 사라지고 있다.

주민이 할 수 없으니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마을을 구상한다. 그러나 선진지를 모범으로 하여 제도를 만들어 사람들을 변화시키려 하더라도 주민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나 태도는 제도가 의도한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만들어진 자치 매뉴얼을 중앙에서 지방으로, 지방에서 주민에게로 보조비와 함께 보내면, 보조비에 길들여져 자생적으로 공공재를 만들어 내는 역량이 오히려 쇠퇴하였다는 진단들이 나온다. 


마을 공동체와 사회적 자치의 현실
마을 깊숙이에는 비민주적인 관행들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한번 대표가 되면 오랜 기간 임기를 지속한다. 주민들은 마을 일에 별로 관심이 없고 소통 의지와 능력도 제한적이다. 마을 일은 이장이나 면장, 혹은 능력 있는 일꾼이나 지도자가 알아서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주민자치회는 주민들이 공동체를 가꾸고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는 공론장이 아니라, 문화활동이나 친목활동이 중심이 되어 굴러간다. 축산 냄새와 환경에 대한 민원이 계속 올라오지만, 이웃간 분쟁만 커지고 정작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찾지 못한다. 공동밥상을 준비하고 주민을 위해 헌신하는 책임 있는 이장과 이웃들도 한순간에 마을이 깨질 수 있다는 백척간두의 심정이다.

한국 사회는 시장체계와 국가체계로 지배된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돈과 권력이 살아가는 제일 목적이 되면서 자원의 남용, 불평등 심화, 공공재의 고갈, 환경 문제가 노정되었다*. 이웃이 불행한 일을 당하더라도 어찌할 수가 없다. 송전탑이 세워지고, 산업 폐기물 처리시설이 들어서고, 마을이 사라지는데도 그것을 막을 집단적 힘을 갖지 못한다. 서로 소통하고 함께 의결하는 장들이 만들어지기 어렵다. 중앙의 권력 다툼이 마을회관까지도 분열시킨다. 살아가는 생활세계가 믿을 수 없고, 안전하지 못하고,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하다. 출산과 돌봄이 커다란 위험이 되는 세상이다.

*노정되다(露呈되다): 겉으로 다 드러나 보이다

 

불평등의 심화, 기후위기, 저출산, 고령화, 국가복지의 한계에 직면한 세상에서 서구 사회는 사회의 자치력을 주목하고 있다. 유럽의 경우 복지국가의 위기, 가족의 변화, 고령화, 실업률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사회적 경제*를 통한 서비스 확대, 일자리 확충, 협치의 길을 모색하였다. 사회적 경제도 다양성을 갖지만, 주민들이 대상이 아니라 주체가 되어, 개인과 공동체의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시민 사회 조직들을 확장하는 방향성을 갖는다. 자체적인 일자리 창출과 복지제공에 성공한 중소기업으로 자리매김한 조직들도 다수 존재한다.

*사회적 경제: 구성원 간 협력·자조를 바탕으로 재화·용역의 생산 및 판매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민간의 모든 경제활동


다른 사회에서는 시간차를 두고 도입된 제도들이 한국에서는 동시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복지국가와 사회적 경제, 마을만들기가 거의 같은 시기에 제도화되었다. 경제위기 이후 구조적인 실업과 빈곤에 대응하여 복지국가의 기능과 자활을 위한 사회적 경제 지원이 실행되었다. 이후 행정기능을 효율화하고 영리와 사회적 가치를 함께 추구하는 사회적 경제 조직들이 확장하였다. 사회적 경제는 구성원 간의 협력, 자조를 통해 이익과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사회적 자치 구현을 목표로 내세우지만, 현장 주민들이 정책의 대상에 머물고, 자치를 생활에서 감각하지 못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이권을 둔 싸움과 행정사무에 치여 현장 서비스에는 구멍이 많다는 것도 문제다.
 
지역 자치를 위한 제도적 개편도 있었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주민자치의 공간을 넓히는 일환에서 주민자치센터가 세워졌고, 노무현 정부에서는 찾아가는 복지행정을 통해 민과 행정서비스의 거리를 좁히고자 하였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행정단체를 통폐합하기 위해 읍면동 단위의 주민자치적 운영 시스템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주민자치회 시범사업을 통해 주민자치회가 공공사무의 일부를 위탁 운영하고, 자체적 주민 사업을 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었다. 그러나 시범사업이란 쐐기로 실질적인 민관협치에 이르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지방자치법 개정에서 주민자치 조항이 삭제되어 13년 가까이 주민자치가 제도화되지 못하였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마을사업, 주민자치, 사회적 경제 지원을 크게 삭감하였다. 목적, 지원의 정도에는 차이가 있지만, 국가가 구상한 주민자치는 민주주의의 심화와 구현보다는 행정 편의의 목적이 컸다. 지역주민들에 의한 권리와 복리*, 주민에 의한 지방자치제도를 자리매김하지 못한 역사의 관행이 계속되었다. 주민을 대표하지 않는 조직과 사람들이 모여 공간재정비, 신활력사업, 분권사업, 마을의 숙원사업을 정하고 있다.

*복리(福利): 복지와 이익

 



생활자치의 가치와 미래
거꾸로 서 있던 자치를 바로 세울 때다. 어쩔 수 없다는 고정관념은 변화의 가능성을 찾지 않는 것을 합리화하고, 혁신의 잠재성을 제약한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고, 예외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예외적이지 않을 수 있다. 
불완전하고 미흡한 부분도 많지만, 사회의 자치력을 제도화하는 노력이 있었고, 생활에서 자치를 만드는 노력이 지속되었다. 국민주권을 실현하는 방법은 생활민주주의라는 인식도 강화되고 있다. 강요된 희생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다양한 친밀성, 돌봄 공동체를 추구하는 움직임들이 커지고 있다. 청년 세대에서도 어떻게 자율적인 삶과 연대가 양립 가능한가를 고민하고 있다. 몸으로 느끼는 자치와 공동체적 연대가 만나는 지형에서 자치는 비로소 생활에 뿌리내릴 수 있다. 생활세계 자치는 요원한 과제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필요하고, 실현 가능한 과제다.

자치는 행복의 조건이다. 돈에 비례하여 행복이 커지는 것이 아니다. 농부가 돈도 안 되는 농사를 계속 짓는다면, 그것은 어리석기 때문이 아니라, 온 감각으로 생명과 가깝게 소통하면서 자연과 함께 생산할 때 직접 몸이 증명하는 역능감* 때문일 수 있다.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은 공동체에 필요한 재화, 서비스, 가치를 창출하는 능력에서 구현될 수 있다. 지역 공동체를 위한 가치를 창출하고, 그것이 다시 가치를 창출하면서 지역경제가 단단해질 수 있다. 이것이 사라지고 있는 마을 교육, 돌봄 공동체와 공유 자산들을 지키는 방법이다. 무언가에 의존해야만 하는 쓸모없는 몸이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독립적으로 살아가며 늙어가는 방법이다.

*역능감(力能感): 자신이 어떤 일을 감당해낼 수 있다고 느끼는 주관적 확신이나 인식


생활 자치의 조건은 복수적이다. 자신을 성장시키면서 공동체를 가꾸고 공동의 목표를 만들어가는 주민, 지역의 일자리·복지·공동체적 가치를 창출하는 다중적 이해 당사자들, 이해 당사자들이 서로 협력하고 함께 지원하는 협치활동, 주민들에게 지역의 공동 의제를 결정하고 행정·서비스 조직을 구성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 그에 기반한 협치가 생활 자치를 가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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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 인구소멸 # 생활자치 # 주민자치 # 지방자치 # 사회적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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