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안보 특집①] 경제안보 시대의 공급망 전략: 효율을 넘어 회복력으로

정철 전문가 사진

정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 2024.01. - 현재 한국경제연구원장
  • 현재 한국경제인협회 연구총괄대표
  • 현재 한국국제통상학회 회장
  • 현재 한국태평양경제협력위원회 공동 회장
  • 전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부원장
  • 전 미국 조지아공대(Georgia Tech) 경제학부 교수

[칼럼 요약]

 지정학적 갈등과 통상환경 변화로 경제와 안보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공급망은 가격과 효율뿐 아니라 신뢰와 위기 대응 역량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다. 한국은 완전한 자급자족이나 일률적인 디커플링 대신, 개방의 이익을 유지하면서 실질적인 안보 위험을 선별적으로 관리하는 '관리된 개방(Governed Openness)'을 공급망 전략의 핵심 기조로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해 비례성·정밀성·국제적 정합성의 원칙에 따라 보호가 필요한 기술·품목·거래를 명확히 하고, 동맹·우방국과 기준을 조율해 기업에 예측 가능한 환경을 제시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인공지능과 무역·물류 데이터를 활용한 조기경보 체계를 구축하고, 대체 가능성과 공급 중단의 파급효과를 기준으로 전략품목의 우선순위를 정해 공급선 다변화, 국내 생산, 장기구매계약, 전략비축 등을 품목 특성에 맞게 조합해야 한다. 아울러 미국·EU·일본 등과의 기술·자원 협력과 글로벌 사우스와의 호혜적 공급망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 또한 RCEP을 공급망 협력의 제도적 기반으로 활용하고 CPTPP의 전략적 의미와 활용 가능성도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으며, 나아가 핵심광물의 추적·인증, 위기 시 상호지원 절차 등 실용적인 국제규칙을 적극 제안하고 형성하는 데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정부는 중소·중견기업까지 포괄하는 민관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기업은 회복력을 미래를 위한 투자로 인식해 최고경영진 차원에서 관리하며 성과지표에 반영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한국의 경쟁력은 개방을 유지하면서도 신뢰받고 회복력 있는 공급망을 구축하는 데 달려 있다.

정철 전문가 썸네일

전쟁은 전선에서만 벌어지지 않는다. 에너지와 핵심광물의 수출이 중단되고, 반도체와 첨단장비의 거래가 제한되며, 해상운송로가 흔들리는 순간 경제는 또 하나의 전장이 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와 중동의 군사적 충돌, 미·중 전략경쟁이 우리에게 확인시킨 현실이다. 안보와 경제를 별개의 영역으로 다루던 시대는 끝났다. 안보가 경제가 되고, 경제의 안정이 곧 안보가 되었다.


이 변화의 중심에 공급망이 있다. 과거 공급망은 기업이 가격과 품질, 납기를 최적화하는 운영의 문제였다. 생산비가 싼 곳에서 만들고, 필요한 시점에 조달하며, 재고를 최소화하는 적시생산(Just-in-Time)이 경쟁력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핵심 부품 하나가 국경을 넘지 못하거나 특정 항로가 막히면 전체 생산라인이 멈추는 시대에는 유사시에 대비해 공급망의 여유와 대체수단을 확보하는 예방적 대응(Just-in-Case)이 중요해졌다. 공급망이 더 이상 기업의 비용 관리에만 맡겨둘 수 없는 국가적 과제가 된 것이다. 반도체와 배터리, 희토류와 인공지능, 에너지와 해저케이블은 산업재인 동시에 국가의 생존과 경쟁력을 좌우하는 전략자산이 되었다.




세계화의 규칙도 달라지고 있다. 지정학은 더 이상 무역에 가끔 충격을 주는 외생변수가 아니라 무역의 기본 운영체제가 되었다. 효율만으로 거래 상대를 선택하던 질서에서는 가격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다. 이제는 그 가격에 공급 중단 위험, 정책 변경 가능성, 기술 유출 우려, 동맹 관계와 안보적 신뢰까지 반영된다. 신뢰가 효율과 경쟁하고, 안보가 새로운 생산요소가 된 것이다.


방산과 첨단기술처럼 민수와 군수의 경계가 흐려진 이중용도 산업에서는 이 변화가 더욱 분명하다. 기술이 우수하고 가격이 낮으며 납기가 빠르다는 것만으로 수주가 보장되지 않는다. 어느 나라의 기업인지, 장기간 안정적으로 정비와 부품을 제공할 수 있는지, 위기 시에도 협력이 지속될 것인지가 구매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경제적 거래가 곧 전략적 선택이 된 셈이다.


오늘날 강대국은 시장접근과 기술, 자원과 금융을 전략적 수단으로 사용한다. 수출통제는 상대국의 첨단산업 발전 속도를 늦추고, 보조금과 정부조달은 생산시설을 자국으로 끌어들인다. 핵심광물의 공급 제한은 제조업의 병목을 만들고, 투자심사와 제재는 기업의 거래 상대와 자금 흐름을 바꾼다. 무역정책·산업정책·안보정책의 경계가 사라진 것이다. 기업은 더 이상 세계시장을 하나의 통합된 공간으로 가정할 수 없고, 국가는 민간의 조달 결정을 전적으로 시장에만 맡길 수도 없게 되었다.


문제는 경제안보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보호주의가 끼어들 여지도 커진다는 점이다. 모든 산업을 국가안보와 연결하면 비효율적인 국내 생산과 과도한 보조금을 정당화하기 쉽다. 반대로 시장의 효율성만 고집하면 위기 때 대체할 수 없는 전략품목과 생산역량을 잃을 수 있다. 경제안보 전략은 이 두 극단을 피해야 한다. 안보상 반드시 보호해야 할 영역은 좁고 명확하게 설정하고, 그 밖의 영역에서는 경쟁과 개방을 유지해야 한다. 경제안보 전략의 핵심은 보호의 범위를 넓히는 것이 아니라 보호와 개방의 경계를 정교하게 긋는 데 있다.


한국은 이러한 변화에 특히 민감하다. 무역의존도가 높고 제조업 비중이 큰 데다 에너지와 핵심광물의 해외 의존도도 높다. 공급망의 한 지점에서 발생한 충격이 원료와 중간재, 물류와 생산을 거쳐 여러 산업으로 빠르게 확산될 수 있는 구조다. 에너지 공급 불안은 원유 가격 상승에 그치지 않는다. 나프타와 석유화학 원료 가격, 운송비와 전기요금의 상승으로 이어져 제조업 전반의 원가를 끌어올리고 수출경쟁력을 흔든다. 반도체와 일부 첨단산업이 호조를 보이더라도 다른 주력산업과 중소기업이 공급망 충격을 견디지 못하면 경제 내부의 격차는 더 벌어질 수 있다.


우리의 취약성은 수입 의존도라는 수치 하나로는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 특정 국가의 비중이 낮더라도 실제 대체 공급자가 없거나, 원천기술·장비·물류가 한 곳에 집중돼 있으면 위험은 크다. 반대로 수입 비중이 높더라도 여러 나라에서 표준화된 제품을 조달할 수 있고 충분한 재고가 있다면 위험은 상대적으로 낮다. 따라서 공급망 위험은 집중도와 대체 가능성, 복구 기간, 산업적 파급효과를 함께 보아야 한다. 최종재만 볼 것이 아니라 2차·3차 협력업체와 원재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입체적인 공급망 지도가 필요하다.




한국 기업이 마주한 선택도 간단치 않다. 미국 시장과 기술 생태계는 한국 기업들에게 매우 중요하지만 중국 역시 여전히 거대한 생산기지이자 소비시장이기 때문이다. 어느 한쪽을 일률적으로 포기하는 이분법은 현실적이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기술과 품목의 안보 민감도, 대체 가능성에 따라 전략을 달리해야 한다. 국가안보와 직결된 핵심기술은 통제와 보호를 강화하되, 범용제품과 소비재 분야에서는 거래와 경쟁을 지속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도 기업에 일률적인 디커플링을 요구하기보다 기술과 품목별로 명확하고 예측 가능한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국내에서 생산하는 것이 답은 아니다. 자원이 부족하고 시장 규모가 제한된 한국이 완전한 자급자족을 추구한다면 막대한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특정 국가와의 거래를 일률적으로 끊는 탈세계화도 현실적이지 않다. 효율 일변도의 공급망에서 유사시에 대비할 수 있는 공급망으로 전환하되, 개방의 이익은 유지하고 위험은 선택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필자는 이를 ‘관리된 개방(Governed Openness)’이라고 부른다. 협력이 상호이익을 만드는 영역에서는 개방하고, 실질적인 안보 위험이 있는 영역은 정밀하게 보호하며, 공동 규칙을 만들 수 있는 분야에서는 대화와 협력을 통해 해법을 찾아가는 전략이다. 개방과 안보를 서로 반대되는 가치로 보는 대신, 제도와 신뢰를 통해 양립시키자는 접근이다. 경제안보는 보호주의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신뢰에 기반한 개방을 다시 설계하는 작업이어야 한다.


관리된 개방에는 세 가지 원칙이 필요하다. 첫째는 비례성이다. 위험의 크기보다 과도한 규제를 도입하면 기업의 비용과 혁신 손실이 커진다. 둘째는 정밀성이다. 국가나 산업 전체를 광범위하게 규제하기보다 실제 위험이 있는 기술·품목·거래를 선별해야 한다. 셋째는 국제적 정합성이다. 동맹과 우방국 사이에서도 기준이 다르면 기업은 중복 규제와 불확실성을 떠안게 된다. 공동의 위험평가와 투명한 사전 통지, 명확한 예외 절차가 관리된 개방을 작동시키는 제도적 기반이다.




이러한 원칙 아래 다섯 가지 과제를 추진해야 한다.

첫째, 공급망의 가시성을 높여야 한다. 어느 품목을 어느 국가와 기업에 얼마나 의존하는지, 대체 공급원은 있는지, 공급 중단이 어느 산업까지 파급되는지를 정부와 기업이 함께 파악해야 한다. 핵심품목 목록을 만드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인공지능과 무역·물류 데이터를 활용한 조기경보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위험이 현실화된 뒤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충격이 생산현장에 도달하기 전에 이상 신호를 포착해야 한다.

둘째, 전략적인 공급선 다변화가 필요하다. 모든 품목의 공급선을 기계적으로 늘리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대체가 어렵고 공급 중단의 파급효과가 큰 핵심광물, 반도체 소재·장비, 배터리 원료, 에너지와 디지털 인프라부터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국내 생산과 해외 지분투자, 장기구매계약, 전략비축, 재활용과 자원순환을 품목의 특성에 맞게 조합해야 한다. 기업의 부담만으로 국가적 회복력을 확보하려 해서는 안 되며, 정부의 금융과 보험, 정보 제공과 외교적 지원이 함께 가야 한다.

셋째, 경제안보 공급망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 단순한 수입선 다변화를 넘어 위기 시에도 작동하는 제도적 관계가 필요하다. 미국·유럽연합·일본 등과 첨단기술 및 핵심광물 협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아세안·인도·중동·중남미 등과 생산·자원·시장 네트워크를 다층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특정 국가나 진영에 새롭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이 기술과 제조역량을 바탕으로 상대국의 회복력에도 기여하는 호혜적 상호의존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넷째, 통상협정을 경제안보의 제도적 기반으로 활용해야 한다.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아세안 10개국과 우리나라를 비롯한 중국,일본,호주, 뉴질랜드 등 총 15개국이 참여한 세계 최대의 다자간 자유무역 협정)을 비롯한 지역 협력체에서 공급망 정보 공유, 비상시 협의, 통관 원활화, 디지털 연결성과 핵심광물 기준을 구체화해야 한다.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태평양에 접해 있는 국가 간 관세 철폐와 경제 통합을 목표로 한 메가 자유무역헙정) 역시 단순한 시장 개방을 넘어 신뢰할 수 있는 공급망 네트워크와 높은 수준의 통상규범에 참여한다는 전략적 관점에서 그 의미와 활용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중견국들과도 개방적이고 규칙에 기반한 통상질서를 지켜나가기 위한 연대를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다섯째, 기업이 체감할 수 있는 민관 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규제와 지원이 부처별로 흩어져 있으면 기업은 같은 정보를 여러 차례 제출하면서도 정작 필요한 위험정보는 얻지 못한다. 정부는 공급망 정책의 컨트롤타워와 부처 간 역할을 분명히 하고, 대기업뿐 아니라 대응 역량이 부족한 중소·중견기업에 위험진단과 대체조달, 금융과 보험을 묶어 제공해야 한다. 경제안보를 명분으로 한 과도한 규제가 기업의 혁신과 해외진출을 막지 않도록 정부와 민간의 역할도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국제규칙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국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개방경제이자 제조강국인 한국은 공급망의 효율성과 취약성을 동시에 경험한 드문 나라다. 반도체와 배터리, 조선과 자동차, 원전 등에서 축적한 제조역량을 바탕으로 핵심광물의 추적과 인증, 공급망 조기경보, 위기 시 상호지원 절차와 같은 실용적인 규칙을 제안할 수 있다. 미국·유럽과의 협력을 강화하면서도 아세안과 글로벌 사우스의 참여 공간을 넓힌다면 진영 대립을 완화하고 선진국과 신흥국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도 수행할 수 있다.




기업 역시 공급망 회복력을 비용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로 인식해야 한다. 공급망 위험은 더 이상 조달부서에만 맡길 사안이 아니라 이사회와 최고경영진 차원에서 직접 관리해야 할 핵심 경영 리스크다. 핵심 부품별 대체 공급자와 적정 재고, 공급 중단 시 목표 복구기간을 설정하고 이를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협력업체의 재무와 사이버 보안, 물류 위험까지 포함한 모의훈련도 필요하다. 가장 낮은 단가를 달성한 부서만 높이 평가하는 체계에서는 회복력이 언제나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구매 가격뿐 아니라 공급 중단 가능성과 예상 복구 비용까지 반영하는 새로운 성과지표가 필요하다.




경제안보는 세계화를 끝내자는 구호가 아니다. 충격에 취약한 세계화를 더욱 지속 가능한 형태로 다시 설계하자는 제안이다. 가장 값싼 공급망이 평상시의 이익을 극대화했다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공급망은 위기 속에서 기업과 국가의 생존을 보장한다.


앞으로의 공급망 경쟁은 비용만의 경쟁이 아니라 신뢰와 복원력의 경쟁이다. 그렇다고 효율을 포기해서도 안 된다. 필요한 것은 효율과 회복력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 아니라, 개방의 이익을 유지하면서 감당할 수 없는 위험을 줄이는 정교한 균형이다. 21세기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것은 가장 낮은 비용이 아니라, 개방을 유지하면서도 가장 신뢰받고 회복력 있는 공급망을 구축하는 능력일 것이다.

 







ㅣ관련자료 모아보기

▶ 국가전략보고서

World Trade Report 2023 (2023.09.13.) / WTO

OECD Supply Chain Resilience Review (2025.06.02.) /  OECD

Global Value Chain Development Report 2023 (2025.05.30.) / WTO et al

Geoeconomic Fragmentation and Commodity Markets (2023) /  IMF

Global Critical Minerals Outlook 2025 (2025) / IEA

▶ 관련 법령

경제안보를 위한 공급망 안정화 지원 기본법 (2023.12.26 제정) / 법제처


해시태그

#핵심광물 #공급망 #예방적대응 #관리된개방 #비례성 #정밀성 #국제적정합성 #공급망가시성 #공급선다변화 #공급망협력 #통상협정 #민관협력

관련자료

AI 요약·번역·분석 서비스

AI를 활용한 보고서 요약·번역과 실시간 질의응답 서비스입니다.

[국방·안보 특집①] 경제안보 시대의 공급망 전략: 효율을 넘어 회복력으로

번역 PDF 파일의 원문 형태 그대로 번역

국가전략포털에서 실시간 AI 질의응답 서비스를 시작합니다. 4가지 유형의 요약과 번역을 이용해보시고, 보고서에 대해 추가로 알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채팅창을 통해 자유롭게 AI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 제공하는 정보는 참고용이며, 정확한 사실 확인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민감한 개인정보는 입력하지 마십시오.